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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파랑새 Apr 05. 2023

'보스턴 마라토너'를 응원한다.

4월 벚꽃 앤딩

누군가 "나의 꿈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늘 '축구선수'라고 말한다.

꿈과 관련해서 달리 다른 대답을 해 본 기억이 없다.

그렇다고 축구 선수를 해 본 적은 없다.

그저 시골 논바닥 축구, 학교 운동장 축구 정도가 전부이다.

그나마 제대로 해 본 축구가 현재 사는 지역에서 아주 오래전에 했던 '개발축구단'이다.

말 그대로 개발축구단은 '조기축구회'에 갈 정도가 안 되는 아재들이 모여 만든 '준 조기축구회'였다.

'개발'은 차라는 공은 안 차고 '헛발질'을 일삼는 경우에 가깝다.

주말이면 동네 조기축구회의 '우렁찬' 목소리가 그저 부러울 뿐, 언감생심 참여는 꿈도 꾸지 못했던 아재들을 위해 문턱을 낮춘 우리들 만의 축구회였다.

한 동안 즐겁게 개발축구회 활동을 했는데, 그 마저도 활동이 중단되지 꽤 오래됐다.

이후 월드컵과 같은 A매치 축구경기를 시청하고 응원하는 것 외에 축구와는 특별한 인연 없이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축구를 좋아하고, 내 꿈은 여전히 축구선수다.

'다시' 태어나면 '축구 선수'를 할 것이다.

다시 태어날 일은 없으니, 그냥 '축구'를 좋아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이런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반 대항 축구 시합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반 대항 축구시합이라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축구를 좋아했으니, 축구 시합에 쏟는 마음이 어느 정도였을지는 지금도 생생하다.

그냥 가슴이 벅차고, 꼭 이겨야 한다는 그 결기가 온몸에 전해져 온다.

몇 번을 이긴 것인지, 첫 경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반이 승부차기 끝에 경기에서 졌다.

그때 친구 Y는 선수 겸 감독(주장)을 맡았다.

승부차기에서 내가 1번 킥 선수로 나섰다.

1번 킥 선수는 선제골을 통해 기선 제압을 해야 하는 역할을 맡는다.

당시 Y는 나를 믿어주고, 선발에 기용했으리라.

결과는?

내가 찬 슛이 골대를 넘어버리는 소위 '똥볼'이 되었다.

첫 단추부터 잘못 꾀어진 우리의 승부차기는 그렇게 패배로 이어졌다.

당시 경기에 대한 생생한 기억은 없다.

나는 기억이 형편없는 사람이다.

승리의 기억은 오래가고, 패배의 기억은 쉽게 잊힌다.

단지 나를 믿어주었던 그 친구를 만날 때면 매번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그가 매번 잊힌 기억을 소환다.

나의 똥볼은 그렇게 '임팩트'가 있었나 보다.

    



친구 Y로부터 아침 일찍 문자가 왔다.

시간 되면 얼굴 보자고.

4월에 만나자는 얼마 전 구두약속이 있던 터라, 바로 점심 약속을 잡았다.

조만간 비 소식에 만개한 벚꽃이 곧 질 수도 있으니 겸사겸사 잘 됐다.

약속 장소는 서울 '정독도서관'.

고등학교 때 같이 이 도서관을 찾은 기억도 흐릿하게 있다.

당시 살던 곳과 다니던 고등학교가 강북지역이어서, 가끔 찾았던 도서관이었다.

지금 정독도서관은 북촌 일대와 인사동과 연계되어 시내 관광코스 중 한 곳이다.

이날도 벚꽃은 한 껏 자신을 뽐냈다.

많은 청춘남녀들이 도서관 마당 주변에 핀 꽃들을 즐겼다.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느라 포즈를 취하는 이들도 많았다.


친구와 나는 도서관 정취를 즐기기 전에 먼저 골목 맛집 투어도 했다.

친구가 꼽은 '맛집'을 들렀다.

점심시간을 지난 시간이라 배꼽시계가 빨라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사람들이 빠졌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아직도 대기줄이 있었다.

우리는 기왕 시간을 낸 것이었으므로 차분하게 대기했다.

차례가 되어 창가 쪽에 자리를 배정받고 맛을 음미했다. 예상대로 맛있었다.

우리는 아재 티를 내며 막걸리 반주도 한 잔 가볍게 걸쳤다.

옛 친구를 만나는데, '곡차'가 빠지면 그것은 '예의'가 아니다.

우리는 늘 우리 식대로 만나왔다.


골목 맛집 투어, 정독도서관, 그리고 정독도서관에서 안국역으로 이어지는 '감고당길'을 걸었다.

이어 인사동 거리를 걸으며, 발길 닿는 대로 갤러리를 들러 작품들을 가볍게 감상했다.

인사동 골목 어느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한 담을 나눴다.




친구 Y는 마라톤을 취미로 한다.

매년 전국 마라톤 대회를 찾아다니며 뛴 지가 꽤 되었다.

그런 친구의 취미를 알기에, 나는 만날 때마다 마라톤에 대한 안부를 묻곤 한다.


친구는 최근에 거제도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를 다녀왔다고 한다. 1박 2일 가족 여행도 겸했다고 한다.

토요일 첫날은 거제도 외도로 가족여행을 하고, 다음 날 친구는 마라톤 대회에 참석한 후 가족과 함께 올라오는 일정이었다.

마라톤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는 대목이었다.

나도 친구가 '이 정도까지인지'는 살짝 놀라웠다.

나는 가족과 함께 여행도 하고, 마라톤 대회도 참석한 것에 대해 '잘했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친구는 마라톤에 대한 진도를 더 뺐다.

친구는 '2026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이미 세웠다.

부인과 동반해서 여행도 겸할 것이고,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통장'도 마련했다.

보스턴 마라톤은 마라토너들에게는 '꿈의 대회'와도 같은 '상징성'을 갖는다.

아무나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사전에 '출전 요건'을 갖춰야 한다.

대회 출전 2년 전에 두 곳의 마라톤 풀코스에 참여해서 기록을 달성해야 한다.

해당되는 대회도 국내 3대 마라톤 대회여야 한다. 기록은 3시간 30분 이내여야 한다.

친구로부터 대략 전해 들은 이야기였다.


친구는 이를 위해 부지런히 몸을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에서 마라톤 동호회에 참여해서 긴장의 끈을 높이고 있다.

혼자 훈련하기보다는 동호회와 함께 하면 연습량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는 마라톤에 또 한 가지 메뉴를 추가했다.

마라톤 대회에 참여할 때는 '페이스 메이커' 역할도 추가했다. 즉 몸에 풍선을 달고 뛰면서 일정 속도를 유지하는 '안내자(가이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친구의 풍선을 보면서 속도(페이스)를 조절하면서 뛸 수 있게 된다. 좋아하는 마라톤도 하고 가이드도 하는 것이니 '일석이조'이다.


친구는 핸드폰에 저장된 자신의 마라톤 사진을 보여준다.

골인 지점을 향하는 '라스트씬'이다.

마지막 구간 사력을 다하고, 목표를 달성한 승자의 표정이다.

자랑은 이럴 때 하라고 있는 것 아닐까.

  



친구는 자신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한다.

마라톤을 통해 삶의 재미와 열정을 더하고 있다.

2026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도 '보스턴 마라토너'로서 당당하게 참여할 것이다.


친구는 가끔 시를 쓴다.

나에게 자랑하듯 보내주기도 하고 보여주기도 한다.

한 동안 '별과 우주'를 노래하더니, 최근에는 좀 더 일상의 소재로 확장했다.


우리는 인생에서 찾아오는 '외로움'에 대해서 말하기보다는 '고독함'을 즐기자고 수다를 떤다.


2023년 4월이다.    

벚꽃은 바람에 꽃비를 뿌린다.

곧 올 봄비에 남은 꽃잎도 마저 떨어질 것이다.

누군가는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말한다.

4월은 핏빛 '4.3'과 혁명의 '4.19'를 품고 있다.


'고독한 보스턴 마라토너'가 우이천 어딘가를 달리듯,

나 또한 지난 긴긴 겨울 동안 몸에 낀 '찌꺼기'들을 덜어내야 한다.

친구를 생각하면서 내 동네에서 걷고 뛸 것이다.

나도 나만의 '보스턴(?) 여행'을 어떻게 꾸려볼까 즐거운 상상도 더할 것이다.




친구는 나를 만나면, 또 고등학교 2학년 때의 '흑역사'를 꺼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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