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엄마목소리 크더라."

by 연주

2025년 8월 4일


딸이 7월 마지막 방과 후 수업을 듣고 나오는데 손에 책이 있더라고. 에그박사 학습만화책 3권. 방금 도서관에서 빌렸다네. 아이고 잘혔네 하니 에그박사는 만화책이라서 내일 반납해야 한다네.

다음날 반납 문제로 아들이랑 말싸움했지. 처음엔 나도 부탁했지. 어차피 드론 배우러 날마다 학교 가지 않니~드론 교실 옆이 도서관이잖니~ 그러니 학교 가는 김에 3권 반납하고 반납한 김에 4권도 빌려다 주라고. 아들은 책 찾는데 시간 걸리는 게 싫어 반납만 하겠다더라고. 해줘라, 안 해준다 서로 티격태격하다 결국에 난 치! 내가 반납하고 빌리고 만다! 했지.


그리고 오늘! 전에 내가 3권을 반납하고 4권을 빌렸으니 이제 4권을 반납해야 할 때가 왔지. 5권은 도서관에 없어서 반납만 하면 되는 거였어. 오후 2시 45분 뜨거운 태양 아래 딸 손을 잡고 학교로 향했어. 어차피 아들을 학교 정문에서 만나 딸까지 데리고 아들이 다니는 영어학원을 택시를 타고 가야 하니깐, 그러는 김에 이 4권도 얼른 반납할 계획이었지.

오늘도 어김없이 덥고 습해. 하지만 평소보다 더 심했어. 뜨거운 물속을 걷는 느낌이었지. 저 멀리 아들이 학교 건물에서 나오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아들과 딸, 나 중 누가 빠를까. 당연히 나보다 힘도 세고 키가 더 살짝 커버린 아들이 빠르겠지. 아들 손에 책을 쥐어줬어. 그리고 부탁했지. 아들! 한 번만! 학원 얼른 가야 하니까 빠른 네가 어서 반납해 주라. 싫다는 아들은 나의 부탁에 결국 책을 손에 쥐고 뛰기 시작했어. 나는 바로 택시 앱을 켰지. 초등학교 위치 검색하고 도착지 설정하고, 일반 택시 선택하고, 직접 결제 선택하고 고개를 들었어. 그런데 아들이 저 멀리 운동장을 가로질러 행정실과 교무실이 있는 건물이 아닌 교실이 있는 건물로 뛰고 있더라고. 워매. 아들 모습에 화가 났어. 도서관은 교무실이 있는 건물에 있거든. 여기 차도로를 이용해 조금만 걸으면 나 어릴 때는 드나들지 못했던 본 입구가 있다고! 거기를 통해 들어가면 도서관 금방 도착이거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어.

아들! 이쪽으로 가면 되는데 어디 가냐! 어디 가냐고!!

나 목소리 크다. 진짜 크다. 아주 우렁차다. 하지만 애들 키우면서 딱 두 번 우렁차게 소리 질렀는데 한 번은 딸이 쩌어기 체육공원으로 뛰어가서 내 시야에서 벗어났을 때, 또 한 번은 아들이 피구 한다고 동네동생한테 공을 세게 던졌을 때. 오늘이 세 번째가 되었네.


아들이 반납했는지 급식실 문을 통해 밖으로 뛰어나오는데 내 눈에 아들 발이 보였어. 세상에! 실내화를 신고 있네. 운동화로 갈아 신겠다고 건물 안 신발장 쪽으로 들어가네! 이 바부팅아! 왜 그러냐 진짜. 답답하다 진짜. 이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고.


아들을 마주하자마자 또 소리 질렀지. 네가 빨라서 시켰는데 그쪽으로 가면 네가 가나 내가 저쪽으로 가나 똑같아. 실내화 신을 생각 말고 저기 현관 통해 가면 신발만 벗고 양말채로 얼른 2층 가면 되는데. 이게 뭐냐고!! 더운데 뭔 고생이여!!


아들한테 잔소리를 퍼붓는데 호출했던 택시가 저기 오네. 아들이 택시를 보고 날 달랬어. 엄마야~택시 타자. 그만. 그만. 택시 타야지.

택시 안에서 아들 얼굴을 바라봤어. 당황+화남 표정이야. 갑자기 미안해졌어. 굳이 소리 지를 것까진 아닌데. 참고 나중에 가만가만 말해도 되는데. 내가 미쳤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소리 질러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아들은 자기 잘못이 아닌 심부름시킨 엄마 잘못이라며 쌩하니 학원 건물로 들어가더라고. 카페에서 열을 식히면서 난 그래도 화낼만했다고 남편에게 카톡 다다다.. 하지만 아들이 진짜 상처받은 건 아닌가 큰일이다 한편으론 걱정도 됐지.


1시간 후 아들을 만났어. 평소처럼 엄마~~ 애교를 부리네. 역시 우리 아들이다. 이 못난 어미를 용서해 다오. 내가 못났다 진짜. 아들~~ 나도 애교를 부리며 아들을 꼭 안아줬어.


아들이 말하더라고. 엄마는 다름을 존중해야 해. 모든 사람이 엄마처럼 같은 생각하지 않아. 나는 학교에서 항상 실내화를 신었던 사람이라고.

딸이 오빠를 거들었어. 엄마, 나는 급식실 가는 그 길 생각했어. 거기로 들어가서 2층으로 가서 그 길 알지? 거기 지나서 가면 도서관 가는데...

아들.. 덥기도 했고.. 그래.. 미안해.. 내가 너무 욱했어.

엄마, 근데 나는 엄마가 나한테 소리 질러도 엄마한테 화 안 냈잖아.

알았어. 나도 화 안 낼게. 근데... 아들, 학교 에어컨 트니깐 창문 다 닫혀 있었겠지?

엄마 목소리 크더라.

딸이 또 오빠를 거들었어. 지인짜 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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