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오빠 나빠!"

by 연주

2024년 4월 26일


태권도 학원에서 나오며 아들이 말했다.

"엄마~더워~샤워하고 싶어~"

"해라~"

"엄마~벽에 붙은 샤워기에 해보고 싶어~"

"응? 그게 뭔디?"

"험프리스 숙소에 있었잖아, 벽에 붙은 샤워기. 안 움직이는 거. 미국은 샤워기가 벽에 붙어 있잖아."

"아, 그거! 우리 집에는 해바라기 샤워기 있잖아. 그게 그거야. 그거 써"


아들은 딸에게 "어제는 네가 먼저 샤워했으니 오늘은 내가 먼저 한다!"말하며 옷을 훌러덩 벗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10분 뒤 화장실에서 나온 아들은 소리쳤다.

"엄마! 좋다! 해바라기 좋은데?"

그다음 딸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해바라기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고 울먹였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다시 줄이 달린 샤워기로 물이 나오게끔 해야 한다. 아... 그런데 아무리 만져도 모르겠다. 툭 튀어나온 버튼을 위로 당겼더니 줄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는데 손을 떼면 버튼이 내려앉으며 해바라기에서 물이 나온다. 해바라기에서 물이 나올까 두려우니 물을 약하게 틀고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혹시나 물을 강하게 트니 버튼이 솟은 상태로 고정되고 줄 샤워기에서 물이 쏴 나오기 시작했다.

"딸~됐어! 씻어!"

부엌으로 가 설거지를 하려는데 화장실 샤워부스 유리문이 쿵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후다닥 화장실로 뛰었다. 딸은 샤워부스 바깥에서 머리에 거품이 보글보글 끓는 모자를 쓰고 몸을 덜덜 떠며 눈물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악을 질렀다.

"물 꾸고 다시 투였는데 해 바야기에서 아악 이앙 물이 다나와 으어엉~~~~~"

"괜찮아, 괜찮아. 그만 울어~엄마가 씻겨줄게~"

줄 샤워기로 바꾸고 꼭 했어야 할 고정을 안 한 나를 탓하며 딸 머리를 헹궈 주었다. 딸은 자신이 3살 때 내게 보여 줬다. 분노가 섞인 울부짖음을 오랜만에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악!!!! 오빠 나빠!!! 오빠 나빠! 오빠 나빠! 오빠 나빠. 으허헝... 오빠 나빠! 오빠 나빠! 오빠 나빠!!!!"

오메, 예전 네 모습이... 마음속으로 말하며 딸을 달랬다.

"그만해 딸! 오빠는 궁금해서 해바라기 쓴 거고, 엄마가 잘못 만진 거야!"

옷을 입히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주는데 딸은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오빠 나빠. 오빠 나빠. 오빠 나빠. 오빠 나빠... 오빠 나빠."

거실에서 게임을 하던 아들은 딸의 울음을 더 이상 못 듣겠는지 한마디 던졌다.

"오빠 나빠를 백번을 하네."

그 말을 들은 딸은 오빠 앞으로 가서 얼굴을 오빠 쪽으로 들이밀고 "오빠 나빠!!!! 으허헝..." 한 번 더 쐐기를 박았다.

방으로 들어가 훌쩍 거리며 눈물을 훔치고 책을 읽기 시작한 딸.

10분 정도 지났나...

아들이 거실에서 아주 크게 파바바밥박박박.. 바.. 팍!!! 방귀를 뀌었다.

오빠의 두툼한 방귀가 딸에게 해바라기 샤워기의 공격을 받았다는 것을 상기시켰나 보다.

딸은 눈꺼풀을 꽉 닫고 눈물을 쥐어짰다.

"오빠 나빠! 오빠 나빠! 으허헝.. 오빠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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