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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가 되어가는 것 같은... 박힌 돌

by 실비아 Jan 12. 2025

2009년 2월 19일, 우리 가족 세명은 이곳 에드먼턴에 새로운 이민자로 랜딩 했다. 우리는 이미 한국에서 전문인력 이민 카테고리*로 이민을 신청해 영주권을 받은 상태였다. 덕분에 캐나다 랜딩 후 새 이민자를 위한 정부 지원 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었고, 그것이 우리의 정착에 큰 도움을 주었다. Mennonite Centre에서 이민자 상담을 받던 중, 사무직을 찾던 나에게 상담자는 C College의 7개월짜리 adminstation 프로그램**을 추천했다. 그다음 날 C Colleage를 방문해 수학과 영어 테스트를 받고 면접을 진행했다. 그곳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새 이민자였고, 학교는 학생들을 한 명이라도 더 모집하기 위해 학교가 대신해 신청해 줄 수 있는 정부 지원 혜택을 열거하며 학생을 유치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리하여 나는 4월 첫 주부터 전액 정부 지원을 받는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학교는 영진이의 풀타임 데이케어 subsidy를 대신 신청해 주었고, 매달 1200달러의 생활비도 신청을 도와주었다. 새 이민자로 나와 남편이 둘 다 동시에 맨땅에 헤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으로, 한 사람은 캐나다에서 살 방법을 찾고 한 사람은 한국에서 돈을 벌어 지원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남편은 이곳 랜딩 2주 후, 아내와 5살 아들을 남겨두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정부 생활비를 받기 위해서라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던 프로그램은 정말 정말 힘든 프로그램이었다. 1 초라 지각하면 기록으로 남기고, 아침 8시 반부터 오후 4시 반까지 이어지는 수업 고군분투하며 코피 터지는 5개월이 지나갔다. 주중이면 매일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서 숙제와 공부를 했다. 주말이면 아들을 데리고 동네 도서관에 가서 나는 공부를, 영진이는 책을 보는 생활을 계속하며 버텨나갔다. 마지막 두 달은 실습이 있었는데, 나는 학교에서 한 번도 실습생을 보내본 적이 없는 주립대학에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두 달 동안 실습생이 무보수로 일한다 해도 그런 초짜를 받아 줄 사무실은 거의 없다는 현실을 나는 무시했다. 그리고 학교 사무실에 내가 지정한 office에 연락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운 좋게도, 정말 운 좋게도 우리가 연락한 사무실에서 실습생인 나를 받아주었고, 실습을 마치기도 전 실습 2주 만에 나는 잡 오퍼를 받았다. 사무실 직원 중 한 명이 long-term leave로 자리를 비우게 되었고, 캐나다 직장 경험이 없어 어버버 했지만, 눈치껏 성실하게 일하는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주립 대학교 사무실에 첫발을 내디딘 후, 이렇게 저렇게 인연의 끈이 이어지며, 동료들과 상사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 캐나다에서는 reference가 매우 중요하다. 학벌, 경력보다는 아는 사람으로부터 "그 사람 괜찮아"라는 reference가 100배 힘이 있다. 그리하여 150명의 이력서를 받았다는 내 두 번째 사무실에서는, 내 상사의 전화 한 통으로 150명 중 나만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고, 결국 나를 뽑아 주었다.  


1년 계약직을 마친 후, 나는 다운타운 캠퍼스 학장 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현재 내 포지션에 있는 "늙은 여우"가 있었다. 몇 년 후면 은퇴를 앞둔 나이가 있는 직원이었지만, 처세와 본인의 업무 처리에 있어서는 매우 노련했고 철저했다. 늙은 여우는 주인 없는 업무가 본인에게 떨어지는 걸 극도로 싫어했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면 그 일을 떠맡지 않을지 그 스킬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얄밉게도 그녀는 매년 6주 정도의 휴가를 한 번에 몰아 썼다. 그녀의 휴가기간 동안 나는 그녀의 백업되어 6주 동안 독박 업무를 떠안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본인 업무에 있어서는 꼬투리 하나 잡을게 없이 완벽하게 해 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나이 들어서 저런 사람은 절대 되지 말아야겠다고......


했는데.....


지금 나를 보면 딱 그 "늙은 여우"가 바로 "나야 나"다. 주인 없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가급적 피하려 하고,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경험에서 우러난 스킬로 이리저리 피해 간다. 그리고 휴가를 갈 때면 아들뻘 동료에게 독박을 뒤집어 씌운다. 미안해서 휴가 전후로 맛있는 밥을 사주고 선물도 사다 주긴 하지만 아들뻘 A는 내가 휴가만 간다고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다. 본인 업무로도 이미 벅차기 때문이다. 내 일에 있어선 빈틈없이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지만, 그놈의 영어 때문에 빈틈이 많은 것은 내 기억 속 늙은 여우와 나의 다른 점이다.

  

내 작가소개에는 2030년, 지금으로부터 5년 후 은퇴를 계획한다고 씌어있지만, Pension을 계산해 봤을 때 55세와 60세 은퇴에는 두 배이상의 Pension금액 차이가 나는 걸 알았다. 그리고 요즘엔 2035년 (60세) 은퇴가 100세 시대를 살아갈 나와 또 우리 가정에 현실적인 답안임을 부정할 수 없다.   


박힌 돌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새 늙은 여우가 되어 버린 나의 모습에 자조적인 웃음이 나온다. 1년 반 전에 새롭게 옮긴 현재의 자리, 보수도 좋고 사람들도 좋다. 이곳에서 은퇴까지 버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박힌 돌이 되어 간다.      


* 그 당시 우리가 지원했던 전문인력이민 카테고리는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C College Administration 프로그램 학생은 더 이상 정부지원을 받을 수 없다. 7개월 Citation 프로그램의 등록을 위해서는 CAD 15,000달러를 학비로 지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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