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는 정말 숨 돌릴 틈 없이 바빴다. 아침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시간에 쫓기며 일만 했다. 점심시간에는 보통 대학교 Gym에 가서 짧은 시간이라도 젊은 피들 사이에서 땀도 흘리고 근육도 단련했는데, 오늘은 그것조차 할 수 없었다. Time-sensitive 한 일들이 쌓여 있고, more time-sensitive 한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새롭게 터졌다. 에너지가 방전되어 퇴근하니 남편이 유산슬이라며 저녁을 만들어 주었다. 비록 생긴 건 유산슬과는 전혀 달랐지만, 맛은 상당히 비슷했다. 여기까지는 분위기 좋았는데 다음 주 내 생일날 어떤 식당을 갈지 서로 얘기하는 과정에서 나는 빈정이 상하고야 말았다. 내가 가고 싶은 식당은 돈가스 전문점인데, 남편은 어디서 오마카세 식당을 추천받아 온 모양이다. 멀기도 먼 돈가스집이 가기 싫은 남편은 여러 가지 태클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걸었다. 결국 짜증이 난 나는 "내 생일인데 내가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어? 아무 데도 안 갈 거야"라고 말하며 토라졌다. 그리고 자리를 피해 2층으로 올라갔다.
그냥 침대에 누워 솔로지옥 시즌 4나 보면서 쉬다가 딱 자고 싶었다. 하지만 침대에 뉘었던 몸을 일으켜 일단 씻었다.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그리고 주방으로 오니 주방이 난리다. 저녁 먹은 설거지 거리며 주방과 식탁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기분이 좀 더 나아졌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갔다. 일단 트레드밀에서 솔로지옥 시즌 4를 시청하며 빨리 걷기 20분을 완료했다. 땀이 나며 기분이 좀 더 나아졌다.
그리고 옆에 놓인 장갑을 끼고 골프채를 잡았다. 나는 지난주 토요일부터 골프 레슨을 다시 시작했다. 원래 2년 전에 10회 레슨을 마쳤지만, 선생님의 권유로 다시 한번 골프에 열심을 내서 내친김에 티칭프로까지 한번 가보자며 다시 10회 레슨을 등록했다. 골프의 기본 그립부터 차근차근 다시 점검하며, 토요일 배운 내용을 복습하며 공을 치고 배운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스윙 연습을 했다. 기분이 좀 더 나아졌다. 그리고 정타로 공이 맞아 "딱" 소리가 나며 공이 날아갈 때, 그 순간 더 기운이 났다.
그리고 옆에 있는 첼로를 집어 들었다. Facebook marketplace를 통해 나는 엄청난 보물을 발견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가 연주하시던 첼로를 손자가 헐값에 내놓았다. 첼로의 가치를 잘 모르는 손자는 그냥 빠른 처분을 원했다. 1968년 독일에서 만들어진 첼로였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물건을 보러 갔다가 이건 보물이다 싶어 내 비상금으로 꼬불쳐 둔 현금을 주고 바로 들고 왔다. 이렇게 나와 첼수 (철수 아닙니다)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나는 오늘 밤에도 첼수를 연주하며 힐링받는다. 비록 1년 조금 넘은 초보 첼리스트지만 첼수와 만나는 시간은 나에게 큰 기쁨이다. 기분이 좀 더 나아진다. 그리고 더 기운이 난다.
그리고 거울 앞 매트 위에서 스트레칭이며 맨손 운동을 시작했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혹사당한 나의 몸과 맘을 이렇게 저렇게 토닥거리며 건강하게 오래 살자 다짐도 해 본다.
그리고 지하에서 1층으로 올라온다. 이젠 브런치에 내일 연재할 글을 쓸 에너지가 생겼다. 그리고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들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