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성찰의 감성 테마시
조각가의 길
-연작시 나의 길 1편-
나의 인생은
나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평탄하고 넓은 길보다는
험하고 좁은 길로
나를 이끌었다.
친절하지 못한 인생 때문에
난 더 단단할 수 있었고
좁은 길 위에서 만난
숱한 이야기들 앞에서
더 겸허할 수 있었다.
많은 이야기들은
설렘 가득한 행보로 이어져
숨이 가빴지만
인생의 좌표에 굵은 발자국을 찍게 했다.
나는 긴 시간을
거대한 돌덩이 앞에 선
조각가로 살았다.
돌덩이 속에는
언젠가 세상을 향해 포효할
사자도 갇혀 있었고
푸른 창공을 가르며 날아갈
독수리도 숨어 있었다.
내 손에는
정과 끌이 들려 있었다.
마구 다루다 보면
사자의 앞발이 상할까
독수리의 날개가 꺾일까
나는 늘
손끝의 힘을 가늠해야 했다.
조심스럽게
온 에너지를 기울여
돌을 깎았다.
이제는
멀리서
푸른 하늘을 넉넉히 나는 독수리를 보고
밀림을 가로지르는 사자를 본다.
그들이
자신의 꿈을 펼치길 바라며
정한 때
나는
조각가로 살았던
긴 시간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기억을 채집하다
-연작시 나의 길 2편-
긴 시간 동안
나는
특별히 힘겨운 인생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고
함박웃음을 나누었으며
그 시간들을
여백으로 남겨 두었다.
언어로 채우는 여백은
잊지 않기 위해 남긴
나의 푸르른 날의 표식이고
빛나던 순간을 영원으로 붙드는
작은 마법이다.
나와 함께한
수많은 생에 대한 예의는
밀실에 보관되어
퇴화되지 않는 소망을 품은 채
언젠가의 호출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이제 나는
흩어진 기억들을 모아
구슬처럼 꿰어
하나의 결로 잇는다.
거친 가시덤불 속에서도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생각들을
내 삶의 역사로
잇기 위해서다.
좁은 길을 걸으며
숱하게 흘려보낸 계절들,
그 계절을
따박따박 걸어 왔던
나의 발걸음들.
거창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한
마음의 궤적.
잎맥 사이
푸르른 숨결로 빛나는
나의 행복을 채집하기 위해
나는
보드라운 채집바구니를 들고
오늘도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