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가 멈춘 자리에서

성찰과 재생의 감성 테마 에세이

by 정하

무대의 조명이 서서히 꺼질 때,

나는 오래전부터 예감해 오던 기척을 들었다.


박수를 한껏 받았던 시간들이

포개진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잔물결로 변해 고요히 내 곁에 멈춰 섰다.


어언 30여 년

내 삶에서 가장 뜨겁고 촘촘했던 시간이

흘러가는 강물 위의 윤슬처럼 반짝이며

나의 생을 비춘다.


오랜 시간

아이들의 꿈을 품어 주고

그들의 삶에 때로 내리던 비를

막아주던 지붕이 되어

하루하루 서 있었던 교실.

그곳은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운 자리였다.


거센 강물을 건너던 아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이 되어 주고자 다짐했던 나날들


숱한 시간의 여울목을 지나

이제는

나만을 위한 시간이

조용히 도착했다.


나는

오솔길을 걸어

조그만 오두막 같은 내 삶의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자

장작불이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오직 나를 위해 피어오르는 따스한 빛.


바람 한 줄기

창문 틈으로 스며들며

오랜 기억의 잔향을 흔들었다.


“수고했어.”

그 말이, 나를 향해 들려왔다.

그 말 한 줄에 가만히 기대어

천천히

내가 걸어온 시간을 들여다보았다.


힘들어서 무릎이 닳게 기도로 보낸 날들,

누군가의 눈물이 내 밤을 흔들던 시간들,

그리고 수많은 웃음으로 채워졌던 아침들.


그 모든 날들이

새로이 걸을 내 앞에 흙이 되어 쌓여 있다.


이 땅은 아직은 묵정밭이지만

새로운 씨앗을 품어 열매 맺을 ‘옥토’라는 사실을.


은퇴는

세상에서 물러나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의 가장 깊은 자리로 돌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조심스럽게 그 땅을 밟아본다.

걸어보지 않아서 알 수 없는

낯설고 자유로운 길….


긴 숨 여유롭게 내쉬며

언어라는 씨앗을

날마다 한 줌씩 심으며

은빛 언어를 낚아 감동으로 요리하고

일상의 빛으로 하루를 빚으련다.


나의 오랜 무대에 정중히 인사하고

박수가 멈춘 자리에서 내려와


나는 이제,

온전히 ‘나’인 채로

나의 길을

천천히 걸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