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치유의 감성 테마시
호수 위의 백조, 무대에서 비상하다
객석의 조명이 꺼지고
무대 위만 환하게 빛을 밝혔다.
드르륵—
휘장이 열리자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하나둘 무대로 들어왔다.
검은 옷자락들이 물결처럼 스쳤고,
그 사이로
검정 시스루 드레스를 입은 딸이 걸어 나왔다.
그 순간,
자리에 앉아 평온을 취했던 내 심장은
다시 딸의 걸음에 맞춰
작게 떨며 뒤따르기 시작했다.
악단이 자리를 잡고
A음으로 튜닝을 시작했다.
각자의 악기에서 길게 뻗어 나오는 ‘라’의 숨—
그 음들이 서로를 부르며
하나의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지휘자가 단상에 오르고
지휘봉이 공중에서 춤을 추는 찰나,
오보에가 먼저
가늘고 애처로운 숨을 풀어놓았다.
바이올린이 호수를 깔고
첼로가 물의 깊이를 더하자
오보에는
감미롭고도 서늘한 음으로
백조들이 노니는 호수의 정경을 그려냈다.
그곳에서
백조는 왕자를 만났고,
음악은 왈츠의 결로
사랑의 첫 문장을 건넸다.
딸의 악기가 움직일 때마다
전율이 일었다.
이제는
물에 빠지지 않고
백조의 호흡으로
선율을 건너고 있었다.
직장과 연습실 사이를 오가던
그 수많은 밤들이
오늘,
음악이 되어 호수 위에 떠 있었다.
수없이 틀리고
수없이 다시 맞추며
혼자 버텨낸 밤들,
포기하고 싶던 순간들,
그래도 악기를 내려놓지 않았던
그 모든 날들이
지금 이 선율 속에
조용히 스며들어 있구나.
백조는 춤추며 사랑했지만
저주를 피하지 못했고
음악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 어둠 속에서도
오케스트라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서로의 숨을 듣고
서로의 속도를 믿으며
끝까지 이야기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마침내
백조의 호수는
비극을 지나
아름다움으로 남았다.
곡이 끝나자
객석의 숨이 한 박자 늦게 풀렸고
곧이어
박수가 파도처럼 일어났다.
앙코르곡은
크리스마스 캐럴이었다.
방금 전까지
호수에 머물던 악기들이
눈 내리는 거리로 걸어 나와
따뜻한 선율을 건넸다.
나는 그제야
긴장을 풀고
크리스마스를 미리 당겨 누리며
캐럴의 음 따라
어깨를 우쭐거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무대 위에서
딸은
전문가들인 교향악단 단원들과
콜라보로 연주한 자리였음에도
당당하게
자기 몫의 음악을 끝까지 연주해 낸
한 명의 연주자였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내 귀에는
아직 백조의 물결이 남아 있었고
내 마음에는
한 해를 건너온 딸의 시간이
조용히 날개를 접고 있었다.
끊임없이
호수의 물에 빠졌던 딸은
이제
선율을 타고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한 해를 뜨겁게 통과한
눈부신 비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