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유머의 감성 테마 에세이
보이스 피싱
며칠 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뭣이냐, 긍께 돈 함부로 빼간다는 그것.”
“아, 보이스 피싱요?”
“아, 그래 그래. 그 전화였는갑다.”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 무슨 일 있었어요?”
“어제 저녁참에 전화가 왔는디
나라 어떤 기관에서 내게로 돈 60만 원을 보낸다고 하더라.
그랑께 인터넷으로 뭐 어찌어찌 하라고…”
“그래서요, 엄마. 어떻게 하셨어요?”
“나는 인터넷인가 그런 것 모르요 하고
그냥 끊어버렸지야.”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엄마, 진짜 잘하셨어요.
그렇게 혹해서 이리저리 누르다 큰일 난 사람들 많대요.
정말 잘하셨어요.”
구순을 넘긴 엄마는
혼자서도 아주 잘 살고 계신다.
뉴스를 챙겨 보시고,
사회 이슈가 되는 기사가 나오면
알 듯 말 듯한 지점에서
꼭 나에게 전화를 하신다.
“뉴스에 뜨던데, 그것 무슨 말이대?”
나는 엄마를 만날 때마다
보이스 피싱 이야기를 반복해서 했다.
전화 왔는데 이상한 말하면 즉시 끊을 것,
절대 이것저것 누르지 말 것,
모르는 사람하고는 통화하지 말 것.
그날은
엄마가 처음으로 실전에 임한 날이었고,
아주 훌륭하게 선방한 날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나도 전화를 받았다.
“네, 누구시죠?”
“우체국 택배입니다. 카드 발송 건인데
지금 집에 계시죠?”
“네? 카드 신청한 적 없는데요…”
엄마처럼 바로 끊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쓸데없이 한마디를 더 보탰다.
“혹시… 보이스 피싱인가요?”
그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돌변했다.
“그 말에 책임지실 건가요?”
그제야 나는
황급히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전화를 끊고 나서
밀려오는 불쾌감에 몸을 떨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도대체 이럴 수가 있다니.
엄마보다 젊고,
정보에 밝다고 믿었던 내가
순간의 방심으로
감정을 해치는 덫에
스멀거리는 두려움의 덫에
걸려버렸다.
내 정보가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흘러 다니고 있다는 것,
불특정 다수를 노린 범죄가
이제는 일상의 문턱까지 와 있다는 것.
어떻게 하면
이 시대를
조금 더 지혜롭게,
조금 덜 무섭게
살아갈 수 있을까.
구순의 엄마는
단칼에 끊었는데,
나는 괜히 한마디 더 하다
버럭질을 당했다.
정보에 밝다고,
세상 돌아가는 걸 안다고
자부하던 나보다
엄마의 직관이
훨씬 정확했다.
이 시대에
지혜롭게 사는 방법은
어쩌면
“나는 모르요”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인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단호한,
“인터넷 그런 거 나는 모르요.”
그 말이
가장 안전한
보안 시스템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