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2’를 보고 딸, 포계를 만들다

일상. 유머의 생활 에세이

by 정하

‘흑백요리사 2’를 보고 딸, 포계를 만들다


딸과 ‘흑백요리사 2‘를 흥미롭게 관전했다.

시즌 1과 포맷은 비슷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결이 느껴졌다.


우리의 시선은 음식보다 사람에 더 머물렀다.


사찰요리의 대가로 알려진 선재 스님,

한식대첩 최종 우승자 임성근 셰프,

이름만으로도 인품이 전해지는 요리 대가들의 스승, 후덕죽 님.


기독교 집안의 독실한 신자였으나

연약한 몸을 위해 사찰 음식을 접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불교에 귀의했다는 선재 스님의 이력은

흥미롭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정갈하고 고운 얼굴,

오신채를 전혀 쓰지 않고도 깊이를 만들어내는 음식들.

그 중 잣국수는

tv 화면을 뚫고 들어가

한 수저라도 맛보고 싶은 유혹이 느껴졌다.


임성근 셰프는 또 다른 방식으로 시선을 붙잡았다.

다소 과해 보일 만큼 빠른 손놀림,

속도전이라도 치르듯

쉼 없이 음식을 완성해 내는 모습.


그중 포계라는 요리는

아주 간단한 재료와 단정한 비주얼로

유독 눈길을 끌었다.


사실 흑백요리사의 음식들 가운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난감한 요리들이 적지 않다.

재료 그 자체로도 충분히 훌륭한데,

그것을 과하게 변형해 기상천외한 요리를 만들거나

값비싼 재료를 육수로 쓰고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장면 앞에서는

요리 전쟁터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감동이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재료의 가격 대비 음식의 맛과 완성도를

자연스레 가늠하게 되는

시장을 다니는 주부의 감각,

즉 가성비와 가심비를 측정하는

나만의 기준이 이미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임성근 셰프의 포계,

선재 스님의 당근 전,

후덕죽 님의 당근 짜장은

‘집에서 해 보고 싶은 요리’였다.


당근 전은 방송이 끝나자마자 딸이 만들어 주었는데

경쟁에서 질 수밖에 없는,

예상대로 아는 맛이었다.

편안하고 익숙한 맛.


그리고 어제,

미루고 있었던 ‘포계’에 도전했다.

내가 재료를 준비해 주고

딸은 직장에서 퇴근하자마자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에 들어갔다.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랐다던 ‘포계‘.

방송에서는 두태기름을 덩어리째 넣으라 했지만

세 군데 정육점을 돌아도 구할 수 없어

카놀라유로 대신했다.


토막 낸 닭을 팬에 올리고

손으로 큼직하게 찢은 대파를 곁들여

앞뒤로 갈색이 돌 때까지 굽고,

양념장을 둘러 잠시 더 익혔다.


딸이 만든 포계

맛이…

흐뭇했다.


양념통닭보다 덜 자극적이면서도

입안 깊숙이 스며드는

마음이 놓이는 맛.


언제부턴가 통닭을 거의 배달해 먹지 않게 되었지만

어쩌다 문득 당길 때가 있다.

그럴 때 이 포계 한 접시면

가족들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킬 것 같다.


딸의 도전 요리

후덕죽 님의 당근 짜장이 남았다.


딸은, 시즌 1을 볼 때는 언제 파인다이닝을 갈까

생각하던 것 같던데

시즌 2에서는 파인다이닝에 대한 관심은 많이 사라지고

이제는 직접 만들 수 있는 요리의 영감을 찾고 있는 것 같다.


늦은 깨달음이지만,

요리는 감동이고

사랑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채고 있어 다행이다.



이전 10화 엄마의 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