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회복의 감성 테마 에세이
‘바람’과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사이에서
어제 딸과 쇼핑을 갔다가
늦은 점심을 먹고 귀가했다.
한우 갈비탕 덕분에 속이 든든,
하루 몫을 쉽게 해결한 것 같아
값을 치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는 시를 쓰고
딸은 클라리넷을 꺼냈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빚을 갚듯
서로의 일에 골몰했다.
엄마는 ‘바람’이라는 시어 앞에서
생경하고 낯선 이미지를 찾느라 고심했고,
딸은 좋아하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을
클라리넷으로 부르고 싶어 애를 썼다.
모녀의 고심이
하나의 공기처럼 방 안에 차오르며
뜨거운 열기로 모락모락 피어오를 즈음—
가시덤불 같은 생각들을 헤치다가
시의 첫 문장이
낚싯줄에 걸려 올라왔다.
‘문풍지를 흔드는
허리 꺾인 바람이
아직도 회초리를 들고
푸르르 떨며 위세를 떨던 날이었다.’
살을 에일 정도로 추운
‘겨울바람’을
매서운 회초리로 길을 여니
‘모슬댁’이
그 길을 걸어 나왔다.
‘모슬댁’은
문학 속의 한 여인,
동네에서 드물게
볼 수도 있던 사람.
엄마의 옷을 입고
나보다 한 세대 먼저
삶의 무게를 지고
특별한 생을 건너야 했던
여인이었다.
엄마의 작업이 고심 끝에 끝났을 무렵,
딸은 얼굴에 온 감정을 담은 채
클라리넷과 씨름하고 있었다.
리드가 좋지 않으면
아무리 애를 써도 소리가 나지 않는데,
다행히 오늘은
부를 맛이 나는 리드를 골랐다고 했다.
조금 여유로워진 엄마가
옆에서 말을 건넸다.
“처음부터 소리를 내려고 하지 말고,
먼저
쏴아——
공기가 가슴을 열게 해 봐.
그 열린 어두운 길을 따라
소리가
아스라하게
뒤따라오도록.”
손으로 천천히 지휘하듯
공기의 길을 그려 주며 말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다
클레센도로
소리를 확실하게 올리는 거야.”
그랬더니
정말로 아스라한 감동의 소리가 만들어졌다.
어려운 라흐마니노프 교향곡을
오늘 시도했는데
좌절 속에서 다시
음을 찾은 라흐마니노프의 숨이
우리 집 거실에
잠시 앉아
한 박자 쉬어 갔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이
오늘 내게로 왔어.
그 위대한 곡을 내가 부르다니.“
딸은 감격에 겨워하며
한마디 더 붙였다.
“오호, 엄마.
시인이시더니
디렉팅을 문학적으로
아주 잘하시는데요.”
그날,
엄마의 ‘바람’은
모슬댁의 수줍으나 강단진 발걸음으로 세상에 나왔고
딸의 라흐마니노프는
바람의 길을 타고 첫 호흡을 얻었다.
서로 다른 예술이
바람결이 이는 한 공간에서
같은 숨을 쉬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