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노래

자각. 성찰의 감성 에세이

by 정하

고래의 노래


딸이 출근하며 말한다.

책을 읽는 사람은 우아한데

글을 쓰는 사람은 폐인이 된대요.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내 안의 갈망을 접고 살 때는

이 시간,

설거지를 해 두고

집안을 정리한 다음

문화센터 갈 채비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식사도 잊은 채

탁자에 앉아 있다.


이 탁자는

나의 오랜 갈망이

목마름을 해소하는 통로다.


내 머릿속에는

대양을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 한 마리가 살고 있다.


그 고래는

어둡고 막막한 언어의 바다를 건너

아득한 시원의 물길까지

천천히 몸을 밀고 간다.


유영하다가

암초든, 이름 없는 작은 섬이든

무언가에 촉수가 닿는 순간

잠시 숨을 멈춘다.


그때

내 안에서는 설렘이 터지고

문장 조각들이

빛의 다리를 놓는다.


나는 그 다리를 건너

시원의 과거로 가기도 하고,

억만 광년을 지나온 별빛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기도 한다.


이 여행의 동행자는

언제나 그 고래.


길벗과 함께라면

조금 폐인 같아도 좋으니,


서늘한 암초 위에서

바다 끝까지 퍼져 가는

고래의 휘파람을 들으며


언어의 씨앗 한 줌 뿌려

평생 가슴에 품고 다닐

먹먹한 열매 하나

맺고 싶다.



이전 17화 은빛 단어를 낚는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