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에세이
사랑의 선율로 아픔을 깁는
― 봉사 천사 제자 이야기 4 ―
작열하듯 타오르던 여름 태양 아래
발악하듯 울어대던 풀벌레 소리가
어느 순간 일제히 멈추었다.
바람이 제법 시원하게 불어오는
노인병동 4층 로비.
치매 환자분들과
휠체어에 의지해 계신 어르신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종성이었다.
종성이의 숨결이 하모니카에 닿자
기가 막힌 선율이 병동을 채웠다.
‘등대지기’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잔한 가락이
굽이굽이 사람들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이내 흥겨운 민요 가락이 흐르자
조용히 숨을 고르고 계시던 어르신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어깨를 들썩이며 덩실덩실 춤을 추셨고
휠체어 위에서도 어르신들의 어깨춤이 시작되었다.
기억은 흩어져도,
기쁨은 이렇게 몸이 먼저 알아보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와 교회에서
학생들에게 늘 말하곤 했다.
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세상을 위해 쓰는 사람이 되자고.
2002년, 봉사 활동의 첫걸음을
이 지역에서 가장 소외된 분들이 요양하고 계시는
치매병원으로 내디뎠다.
수화 찬양과 율동으로 이루어진 위로 공연,
병동 청소와 말벗, 산책과 식사 도우미까지
학생들은 보람 있는 봉사의 시간들을 보냈다.
종성이는
국제무대에서도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하모니카 인재였다.
고3의 바쁜 시기에도
한 달에 두 번 있는 봉사 활동만은
빠지지 않고 참여해
하모니카로 위로의 시간을 선물했다.
“종성아,
하모니카 선율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아픔을
깁는 사람이 되는 건 어떻겠니?”
“네, 선생님.
제 음악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어디든지 찾아갈게요.”
지금 종성이는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하모니시스트가 되어
하모니카 선율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날, 병동에 울려 퍼졌던
그 숨결처럼
종성이의 음악은
지금도 수많은 이들을 감동에 젖게 하여
아픔을 깁고 있을 것이다.
그 여름의 병동에서
달란트가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갈 때
비로소 사람을 살린다는 걸 기억하며
음악은 사라졌지만
그날 위로받은 마음들은
어딘가에 뿌리 내려져
가지 뻗은 나무가 되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