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동토에서 들려오는 위로의 선율

안토니오 비발디의 4계 겨울 2악장

by 정하

침묵의 동토에서 들려오는 위로의 선율


- 작가 소개 -


안토니오 비발디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다.


후기 바로크 시대를 이끈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그가 죽은 지 300년이 가깝기 때문에 저작권의 제약이 없어

그의 음악은 누구나 자유로이 연주하고 사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비발디의 음악은 유독 자주 등장하여

많은 이들의 귀에 익숙한 선율로 남아 있다.


그는 450곡이 넘는 협주곡을 남긴

다작의 음악가로도 알려져 있다.

다양한 악기와 형식 속에서

자신만의 선율과 리듬을 끊임없이 실험했다.


붉은 머리칼 때문에

‘붉은 사제(Il Prete Rosso)’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그는

음악으로 세상을 그리려 했던 작곡가에 가까웠다.


- 보이는 음악 -


비발디의 음악 세계를 한마디로 말하면

보이는 음악, 장면이 있는 음악이다.


그는 추상적인 감정보다

자연의 소리, 날씨의 변화, 사람의 움직임을

선율과 리듬으로 직접 그려냈다.


특히 「사계」에서는

새가 우는 봄,

폭염의 여름,

수확의 가을,

눈보라의 겨울까지

자연의 1년이 음악으로 펼쳐진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전문 지식이 없어도

“아,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감각이 먼저 알아차린다.


비발디의 곡들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기교 때문이 아니라

음악이 먼저 말을 걸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귀로 듣기 전에

마음으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음악,

보이는 음악으로 사람들 가슴을 자연스레 공명시킨다.


- 침묵의 동토에서 들려온 선율 -


나는 오래전

일찍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영혼이 무너지는 듯한

깊은 상실의 시간대에 나는 격리되었고

사계절의 끝, 겨울을 건너고 있었다.


생명력으로 용솟음치던 봄을 지나

작열하듯 타오르던 여름을 건너

열매를 풍성히 맺던

가을의 숲길마저 지나

마침내 침묵의 동토 위에 서 있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눈보라의 한가운데서

묵묵히 고개를 떨군 채

살아가던 그때,


내 영혼의 귓가에

비발디 「사계」 겨울 2악장이

아주 낮게 들려왔다.


그 선율은

무너질 것 같던 내 삶을

다시 세워주기 위해

영혼 깊은 곳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긴 겨울을 건너는 동안

내 입술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흥얼거리는 멜로디가 되었다.


- 겨울 2악장 -


예술의 전당 신년 음악 축제인

오케스트라 위크 4일째를 화려하게 장악한

일본 도쿄프라임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김다미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는 압권이었다.


그가 연주하는 4계의 겨울 2악장 바이올린 선율은

우리를 추운 겨울의 끝에서

벽난로 속의 장작이 타오르는 따뜻한 방안으로

이끌었다.


겨울 2악장은

라르고(Largo),

아주 느리고 넓게 펼쳐지는 악장이다.


눈보라처럼 몰아치는 겨울 1악장 뒤에

이 음악은 갑자기 속도를 늦춘다.


마치 밖의 추위에서 벗어나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온 순간처럼.


주선율을 맡은 바이올린은

길고 부드러운 호흡으로 노래하고,

반주를 맡은 현악기는

같은 리듬을 반복하며

묵묵히 바닥을 지탱한다.


반복된 선율로

밖의 겨울은 끝나지 않았고

추위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바이올린의 은은한 선율은

난로의 불이 조용히 타오르며

얼어 있던 가슴과 손을 녹이듯

포근한 온기를 건넨다.


오늘 하루쯤은

이렇게 있어도 된다고

묵묵히 곁을 내어주며

선율은 날개를 달고 고요히 흐른다.


이 선율은

가장 힘든 순간에도

영혼 깊은 데서 흘러나와

난로만큼 따뜻한 온기를 전하며

깊은 위로가 되어준다.


그 옛날,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예고 : 균열 위에서 춤추는 왈츠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