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질서가 우주로 건너갈 때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4번

by 정하

ㅡ 작가 소개 ㅡ

(선율을 질서로 만든 사람)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음악을 질서와 신뢰의 언어로 정제한 인물이다.


바흐의 음악은

감정을 과시하지 않는다.

대신 소리들 사이에

정확한 관계를 세우고,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되도록 만든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누군가가 옆에서

“세상은 아직 안전하게

잘 돌아가고 있어”

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급변하는 이때,

300년이 훨씬 넘는 과거에 작곡된 그의 음악이

여전히 클래식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이유가

어쩌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현기증 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인류는 과거의 문화를 존중하며,

그 위에 서서 미래를 바라보고

현재를 살아가고자 한다는 믿음을 놓지 않는다.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그 오래된 믿음이

아직 유효하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하는 음악처럼 들린다.


- 작품 세계 -


바흐의 협주곡들은

독주자의 기교를 드러내기보다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보여준다.


선율은 혼자 앞서 나가지 않고,

반주는 뒤에서 묵묵히 버틴다.

모든 음은

자신의 자리를 알고 있으며,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바흐의 음악이

시간과 장소를 넘어

지금까지 연주되는 이유는

그 안에 보편적인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 아니라 질서,

혼란이 아니라 균형에 대한 믿음.


- 우주로 보낸 지구인의 선물 -


NASA는

지구 밖 생명체의 가능성을 탐사하기 위해

보이저 1호를 우주로 쏘아 올렸다.


혹여 그 탐사의 끝에서

외계 문명과 조우하게 된다면,

지구를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인류는 메시지를 담은 LP 디스크를 제작했고,

이를

‘골든 레코드(Golden Record)’라 불렀다.


그 안에는

인류가 축적해 온 과학 이론과

지구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

각 나라 언어의 인사말과 함께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 담겼다.


여섯 곡으로 이루어진 이 협주곡에서

악기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고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음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바흐가 만들어 놓은

질서와 균형이

설명 없이도

몸으로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복잡한 감정이 가라앉고,

세계가 아직

정연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조용한 확신이 남는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왜 인류는

우주로 보낸 선물 속에

이 음악을 넣었을까.


만약 누군가

이 협주곡을 듣는다면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이해할까.


18세기에 작곡된 이 음악은

특정한 시대의 유행을 넘어

범지구적인 균형과 질서의 정석처럼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다.


그렇다면 21세기인 지금,

우리가 다시

‘보이저’ 같은 우주선을 쏘아 올린다면

과연 어떤 음악을

그 안에 담자고 말하게 될까.


질서일까,

혼란일까,

혹은

그 둘을 동시에 껴안은

또 다른 소리일까.


작품 감상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4번, G장조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4번은

두 대의 플루트와

바이올린이 독주 악기로 등장하는 협주곡이다.


이 조합은

이 곡의 성격을 단번에 드러낸다.

부드러움과 명료함,

그리고 그 위를 가볍게 가르는

바이올린의 선.


선율들은 서로를 밀치지 않는다.

대신

정확한 간격을 유지하며

앞서고, 물러서고, 다시 합류한다.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질서란 억압이 아니라

신뢰의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이 곡이 우주로 가게 되었을까


이 곡에는

특정한 감정이나

시대의 취향보다

구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언어가 달라도,

문명이 달라도,

심지어 인간이 아니어도

이 음악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소리로 존재하지만

함께 질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4번은

지구인이 우주로 보낼 수 있는

가장 조용하고 우아한

인사처럼 들린다.


예고 : 침묵의 동토에서 들려오는 위로의 선율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2악장’)


참고 : 골드 레코드(Golden Record)’는
1977년 발사된 보이저 우주선에 실린
지구의 소개 자료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지휘 아래 제작된 이 음반에는
지구의 자연 풍경,
다양한 언어의 인사말,
과학적 정보와 함께
인류를 대표할 음악들이 담겼다.

클래식 음악으로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과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그리고 베토벤의 교향곡 5번 등이 선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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