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오블리비온
작가 소개
(탱고에 고독을 들여온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반도네온 연주자다.
그는 전통적인 탱고에
재즈와 클래식의 어법을 과감히 끌어들여
‘누에보 탱고(Nuevo Tango)’라는
새로운 음악 세계를 열었다.
피아졸라의 음악은
춤을 위한 리듬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듣는 음악,
내면을 향한 음악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그의 곡에는
열정 못지않게
고독과 침묵,
말해지지 않은 감정들이 깊게 스며 있다.
-작품 세계-
(격정 대신 머무는 슬픔)
피아졸라의 음악은
흔히 탱고 하면 떠올리는
화려한 발놀림이나
강렬한 리듬과는 다르다.
그의 선율은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자주 멈추고,
돌아보고,
주저한다.
특히 느린 곡들에서
그의 음악은
상실과 그리움, 회한 같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놓아둔다.
피아졸라에게 음악은
무언의 독백이자
흩어진 감정을
조용히 정리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잊지 않으려 그에게 헌정하는 선율, 〈망각〉-
딸은 초등학교 때부터
클라리넷을 불었다.
대학 시절에는
재즈 동아리와 교회에서
앙상블 활동도 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르며
클라리넷의 선율은
케이스 속에 갇힌 채
서서히 잊혀 갔다.
힘든 직장 생활로
영혼이 메말라가던 어느 날,
오케스트라 창단 소식을 듣고
다시 악기를 들었다.
굳어 있던 입술로
클라리넷을 불기 시작했다.
레슨 선생님의 도움으로
굳었던 호흡이 풀리고,
선율이 다시
딸의 영혼을 휘감을 즈음
믿기 힘든 소식을 들었다.
레슨 선생님의
급작스러운 죽음.
장례식장에서
참아냈던 울음을
돌아오는 차 안에서
끝내 쏟아냈다 한다.
집에 돌아왔을 때도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가장 최근에,
가장 따뜻하게
자신을 존중하고
음악의 세계로 이끌어주던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잃는다는 것은
망각에 가까운 일이고,
한 사람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가 살아온
빛나던 생 전체가 사라지는 일이다.
클라리넷의 세계에서
별처럼 빛나던 사람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딸에게 큰 슬픔으로 남았다.
며칠을 그렇게 지낸 뒤,
딸은 클라리넷을 들고
연습실로 향했다.
그분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분의 선율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엄마를 단 한 사람의 관객으로 삼아
Oblivion을 연주했다.
가슴 밑바닥이
조용히 젖어드는 느낌이었다.
애틋한 선율을 타고
그분은 햇살 밝은 곳으로 가며
딸에게
“안녕”이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작품 〈망각 Oblivion〉 해설-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
〈망각〉은
1980년대에 작곡된
피아졸라의 대표적인 느린 곡이다.
제목 ‘Oblivion’은
‘망각’을 뜻하지만,
이 음악은
결코 가볍게 잊어버리는 상태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잊히지 않아서
조용히 가라앉은 마음에 가깝다.
이 곡의 선율은
처음부터 끝까지
낮은 온도로 흐른다.
격정적으로 터지지도,
울음으로 무너지지도 않는다.
마치
슬픔을 이미 한참 지나온 사람이
뒤늦게 꺼내어
조용히 바라보는 기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