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바람이 앉은 자리

기억.회복.재생의 감성 언어

by 정하


바람이 심하게 불던

어떤 날이 있었다.


몸은 제자리에 있었지만

마음은 언젠가 모르게

조용히 떠나갔다.


비어 있는 몸속을

바람만이 이쪽저쪽 나부꼈다.


기억의 빈 껍데기를 주워

가만 귀에 대보면,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의 해루질 소리.


사각— 사각—

바람은 파도가 건져 올린

오래된 기억을

천천히 적고 있었다.


어쩌면, 문득

바람이 내 어깨에

고요히 내려앉는 날이 오면,


나는 기억의 편린을 주워

후미진 숲을 헤치고 들어가


깊이 잠들어 있는

나를 깨워

조용히 데리고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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