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늦게 도착한 빛

ㅡ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시적 변주ㅡ

by 정하

1. 만나러 가는 길

(안나의 시간 / 과거에서 미래로)


우주 끝

먼 행성을 향한

그리움을

마음속에서

저어 왔다.


세월이 가라앉을 때까지

몇 번이고

달이고 또 달이며

가슴 깊은 곳에 두었다.


어쩌면 그리움이란

지나간 시간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을 향해

먼저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빛보다 느린 걸음일지라도

언젠가 닿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는

백 년의 시간을 건너

눈을 뜬다.


먼 길을 돌아온 빛처럼

아득한 기억 하나가

내 안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사라진 이름들 사이에서

끝내 부르지 못한

응답 없는 이름을

부르기 위해


나는

먼 곳을 향해


이 닿지 않을 거리 위에

나의 시간을 하나씩 놓는다


언젠가

아주 늦게 도착한 빛처럼
당신이
나를 알아볼 수 있도록




2. 미래에서 오는 빛
(남편의 시간 / 미래에서 과거로)

여기는
당신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
나는
이미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함께 있던 시간보다
더 긴 시간 속에서
나는
당신을 두고 먼저 왔다.

별빛은
언제나 늦게 도착한다고 했지
그래서 나는 안다
지금 이 빛이
당신이라는 것을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지나온 것처럼

당신의 걸음은
시간을 거슬러
나에게 오고 있다

나는 매일
이 행성의 밤을 켜 두고
사라지지 않는 좌표 하나에
당신의 이름을 묶어 둔다

혹시라도
당신이 길을 잃을까 봐
아무도 듣지 못할 교신을
계속해서 보낸다

여기 있다고
여전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광활한 우주의
적막한 어둠을 뚫고
끝내 오고야 말
당신을 기다리며

나는
이곳에서
조금도 먼저 떠나지 않는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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