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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기쁨

겸재 정선과의 조우

by 라이프 위버


'배움의 발견’이라는 책을 보면, 저자가 서양예술사 시간에 교재에 나온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해 교수에게 질문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부모의 뜻에 따라 대학을 입학하기 전까지 학교를 다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공교육을 받은 덕분에 정선, 김홍도, 신윤복이 조선시대 3대 화가인 것을 알고 있었다.


설 연휴 마지막 날에 강서구(서울)에서 볼 일이 있었다. 일을 마치고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근처의 서울식물원에 들렸는데 식물원 입구부터 늘어선 차량을 보고 방문을 포기했다. 집으로 가려고 우회전을 하였는데 오른쪽에 겸재정선미술관이 눈에 들어왔다. 그 뒤편에는 작은 동산(궁산)도 있어서 우선 주변 환경이 마음을 끌었다.


미술관에 들어서니 안내대에 앉아계시던 분이 반색을 하며 오늘은 설연휴라서 입장료(평소에는 1,000원)가 무료라고 했다. 그녀는 이곳은 한 번 와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자랑했지만 아무 기대 없이 겸재 정선 전시장인 2층으로 올라갔다.


강서구에 겸재정선미술관이 세워진 이유는 정선이 그 시대에 양천현(현 강서구 지역)의 현감(현 구청장에 해당)을 지냈던 인연 때문인 듯했다. 정선의 원화들은 국립중앙박물관, 호암미술관, 간송미술관 등에 소장 중이고 대부분의 그림은 복사본이었다. 하지만 미술애호가가 아닌 내게는 정선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전시였다.


전에 친구들을 따라서 간송미술관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전시되어 있었던 조선시대 그림이나 서예들은 건성으로 보았었다. 그 시간은 그저 중고등학교 때 들어본 화가, 서예가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일 뿐이었다. 너무 많은 작품들이 걸려있어서 나 같은 미술 문외한들은 소화불량에 걸리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그런데 겸재정선미술관은 나 같은 사람도 즐길 수 있게 적당한 분량의 전시이고 겸재 한 분에게 집중하고 있어서 차근차근 그분만 알면 되니까 일단 뇌에 부담이 되지 않아서 좋았다. 게다가 설연휴에는 놀아주어야지라는 나의 느긋한 마인드가 그림을 차분히 들여다볼 여유를 안겨주었다.


산수화의 거장답게 산수화가 주를 이뤘고 풍속화도 있고 정물화도 있었다. 평소에 미술에 별 관심이 없던 나도 그의 그림들에 빠져들 수 있었고 그의 산수화를 보고 그곳으로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그림이 살아있었다. 진경산수화라서 그런 것일까? 정선 이전에는 화가들이 그저 중국의 산수화를 보고 그렸다면 그는 직접 가서 보고 산수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가 이러한 화풍을 시작한 화가라고 한다.) 또 놀라운 것은 그림에 천재적인 정선이 노력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림 연습을 많이 해서 붓을 자주 닳아 없앴다고 한다.


3층에는 카페도 있어서 달달한 인스턴트 수정과를 마시고(설이니까) 내려오면서 안내원께 한마디 했다.

"정말 다시 오고 싶은 곳이네요!"


내가 그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었고 내게 정신적 여유가 있었다는 점이 작용했다 할지라도 내가 그를 진짜 만나게 한 것은 정선 자신이었다. 내가 그의 그림에 매료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를 제대로 만났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진정한 만남은 늘 기쁨이다!


순간적으로 와닿아서 사진 찍은 정선의 작품들을 전시된 순서대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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