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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맛집과 여사장님들

by 라이프 위버 Feb 0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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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 소파에서 졸다가 눈을 떠보니 티브이 화면에서는 진도의 홍주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반쯤 떠진 눈에 들어온 한 아낙의 얼굴. 나이 든 여인들의 전형적인 뽀글 머리, 유행 따라 문신한 어색한 눈썹, 구릿빛 피부, 깊게 골진 주름. 결코 편안한 삶을 살았을 것 같지 않은 인상이었다. 이어지는 홍주를 만드는 과정. 더 이상 외모는 그녀를 존경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젊어서부터 만든 홍주는 그녀로 인해 그 명맥이 유지될 만큼 그녀는 귀한 장인이었다. 그녀를 보며 생각은 해남으로 달렸다.


설 전 주에 동료들과 해남 여행을 다녀왔다. 행선지는 두륜산과 대흥사, 땅끝마을 일출과 보길도의 윤선도의 원림과 세연정, 달마산 도솔암, 윤선도 고택 녹우당, 정약용의 다산초당. 원래는 소쇄원이 들어있었으나 시간상 패스하였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차라리 다산초당을 패스하고 소쇄원에 들리면 더 완벽한 남도기행이 될 것 같다. 우리를 뒤따라 내려온 동료 부부가 우리를 따라서 여행한 후 자신들의 원탑은 소쇄원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여행길에 만난, 장인 정신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두 분을 소개하겠다. 먼저 소개할  2박 3일의 일정 중 둘째 날 저녁 식사를 위해 들린 ‘우래정'의 여사장님이다. 관찰력 좋은 한 동료가 간판의 한자가 또 우에 올 래자라고 했다. 이름대로 될 것 같다. 그 집은 해남에 갈 일 있으면 다시 갈 생각이니.


도솔암 일정을 끝내고 근처 식당을 검색해서 전화를 했으나 받질 않았다. 다시 그 집 주변의 식당을 탐색하니 우래정이 눈에 띄었다.(이렇게 인연은 우연히 온다.)  전화했다. 7시쯤 도착할 건데 괜찮은지 묻고(시골이라서 비교적 문을 일찍 닫는것 같았다) 모두 16명이라고 알려드렸다. 작은 동네 가게에 비상이 걸린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주방을 책임지는 여사장님 외에 세 여인이 더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리 차려놓은 밥상을 보고 우리는 가벼운 탄성을 질렀다. 전라도식 굴무침, 양념꼬막 등 밥상에 놓인 여러 가지 맛있는 반찬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백반의 메인요리로 삼치 구이가 나왔고 국으로는 순두부찌개를 한그릇 가득 담아 주셨다. 단체 손님이라고 서비스로 처음 먹어보는 삼치 회를 주셨다. 원래 놓여있던 김을 보더니 동생인듯한 여인이 더 맛있는 것을 준다면서 비싼 곱창김을 듬뿍 내왔다. 또 다른 여인이 삼치구이를 리필해 주셔서 생선 마니아인 한 동료는 입이 벌어졌고 그 식탁의 다른 동료들은 삼치구이로 가는 손길을 절제해야만 했다. 추가 음식으주문한 제육볶음의 돼지고기는 맛이 다르다고 이구동성이었다. 비계부위조차 쫀득한 식감과 고소한 맛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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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래정

여사장님은 2시간 전까지라도 미리 연락 주었다면 더 차려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편 줄려고 아껴둔 음식까지 내올 수 있었단다. 맛있는 반찬보다 더 좋은 것은 그런 그녀의 푸근한 마음이었다.


또 한 분 소개하고 싶은 분은 셋째 날 아침 식사를 위해 들린 ‘북일 기사식당’의 여사장님이다.(이곳은 택시 기사님이 추천한 곳이다.) 아무래도 여러 명이니 도착 10분 전쯤에 식당으로 전화를  해드렸다.  도착하니 식탁에 반찬이 그득했다. 삭힌 홍어, 조기구이, 계란 프라이, 제육볶음, 잡채 등등.  반찬의 구색을 보고 우리는 눈이 휘둥글해졌다.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아침부터 이런 황제 밥상을 받다니. 나는 원래 아침 안 먹는데 이런 밥상은 안 먹을 수 없다느니 등등. (평소에 아침을 안 먹는다는 그 동료는 잔반처리를 위해 계란 프라이를 두 개나 먹었다.)


채소들은 모두 여사장님 텃밭에서 기른 것이라고 했다. 이런 반찬을 갖춘 밥상이 단돈 만원이었다. 어제저녁 백반보다 이천 원 저렴한 가격이었다. 밥값보다 나를 더 행복하게 한 것은 국이 나의 소울푸드인 시래기 된장국이었다는 점이다. 된장구수한 집된장 맛이었다. 여기에 더해 여사장님은 생굴을 서비스로 내오셨다. 그런데 그 생굴은 바다에서 갓 따온 듯 신선해서 오랜만에 정말 맛있게 먹었다. 식후에 우리들은 황칠나무(해남 지역은 황칠나무를 많이 기르고 었다.)를 비롯해서 13가지 약재로 달인 차를 마시고 첫날부터 이 집을 알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가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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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기사식당

두 여사장님들은 지나는 나그네들에게 맛과 넉넉한 인심으로 행복한 순간을 선물하셨다. 오너쉐프로 식당을 운영하는 일이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 힘든 일에 대한 물질적 보상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서 프로가 돼있었고 게다가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그것이 장인 정신이 아니면 무엇일까? 진도의 홍주를 만드는 분과 마찬가지로 시골의 작은 식당에서 자신의 가게를 찾은 사람들에게 최선의 반찬을 만들어주는 여사장님들 역시 삶의 달인이고 업계의 장인이다.


다시 찾아갈 때까지 그들이 건재하시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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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세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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