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메타버스 그만 해주세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행사가 연일 화제의 중심에 있습니다. 찜통더위에 물이 차오르는 새만금에서 4만 3,000명의 전 세계 스카우트를 모아두고 벌어지고 있는 여러 행각들 때문이죠. 한국의 K-POP문화와 함께 환상을 가지고 온 전 세계 대원들은 에어컨 하나 없는 텐트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뉴스를 보면서 새만금 방문 전 코엑스에서 설레는 표정으로 돌아다니던 대원들의 얼굴이 떠올랐는데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책임이 누구한테 있느냐 하는 지긋지긋한 정치 싸움 속에서 우리의 메타버스 이야기는 또 빠지지 않았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번 행사를 위해 약 10억 원을 들여 ‘잼버리 오픈 월드’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메타버스’라는 마법의 단어를 또 넣어서 대대적으로 홍보했죠. 궁금하신 분들은 초록검색창에 잼버리 메타버스를 검색해 보시면 수많은 후기와 기사들이 쏟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극적인 제목들과 달리 잼버리 메타버스의 콘텐츠 구성은 아주 기특합니다. 전주 한옥마을 등의 전북 지역 대표명소의 가상 문화 체험과 함께, 실제 잼버리 활동과 유사한 11종의 놀이형 콘텐츠도 구성했습니다. 콘텐츠 아이디어 낫 배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요?
자 먼저, 들어가기에 앞서 현재 기술 수준에서 메타버스가 필요한 산업과 상황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 메타버스는 이 정도만 충족해도 활용 여지가 충분하며, 비로소 지금 수준의 인식에서 메타버스를 최대한으로 구현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우리의 잼버리 메타버스의 현실은 어떨까요?
현실에 없는 공간인가?(Nonexistence)
이는 간단합니다. 현실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굳이 메타버스로 3D로 만든다고 해서 사람들은 즐기지 않습니다. 현실에 있는 공간을 3D로 즐기는 시대가 오려면 야외 활동이 힘들어진 인류가 지하세계에 숨어 더 이상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없을 정도는 되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3D로 만들어진 콜로세움을 체험하는 데에 5,000원이라도 투자할 마음이 있으신가요? 그럼 잼버리 메타버스는 어떨까요? 전주에 방문하는 4만 3,000명의 대원들에게 굳이 전주의 관광 명소를 툰방식의 낮은 퀄리티의 3D로 보여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굳이 VR로 체험하게 하려고 했더라도 이미 우리에게는 실제 현장을 VR 360 카메라로 찍는 기술을 갖추었는데 말이죠.
접근이 용이한가?(Accessibility)
이번 10억짜리 메타버스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4만 3,000여명의 대원들은 메타버스에 접속하기 위해서 무려 359MB나 되는 앱을 설치해야 합니다. 새만금 현장에 5G 무료 와이파이가 설치되어 있던가요? 아니면, 우리는 IT강국이라 무제한 5G 요금제 정도는 보통 쓰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이뿐만이 아니라 176개국에 출시된다는 이 애플리케이션은 시작부터 sign in(회원가입/로그인)이 sigh in으로 표기되어 있어 표기 그대로 깊은 한숨을 쉬게 만들었습니다. (혹시 그런 의도..?) 물론 완전 다국어화 되지 않은 자랑스러운 한글 콘텐츠들이 즐비하여, 잼버리 대원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한글을 배우고 싶게끔 만들고 있죠.
몰입감이 뛰어난가?(Immersion)
구글플레이 스토어의 한 리뷰로 제 의견을 대신하겠습니다.
즐길만한 요소가 충분한가?(Enjoyable)
이 부분에 대해서 크게 딴지를 걸진 않겠습니다만은 즐길만한 요소가 어느 정도 수준이냐에 대해서는 이렇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다. 같은 국궁 체험을 해도 언리얼엔진으로 제작된 배틀그라운드 수준의 3D 게임환경 속에서 VR을 착용하고 숲 속에서 달려가는 토끼를 잡는 게임과 휴대폰에서 20년 전 3D 수준의 환경을 체험(?)하며 손가락으로 드래그하여 활을 과녁에 쏘는 게임은 어떤 차이가 있을 것 같으신가요? 콘텐츠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현실과의 연계성이 높은가?(Connectivity)
잼버리 메타버스를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금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금화를 통해 유저들은 무려 아바타 의상교체를 할 수 있습니다. 나와 닮지도 않은, 3등신의 아바타 의상교체를 할 수 있다는 설정입니다. 심지어 의상의 수도 많지 않습니다. 잼버리 활동 중 시간을 내어 메타버스에 들어와서 금화를 열심히 모아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바타 의상 교체라니, 휴대폰 배터리를 1%라도 아껴야 하는 잼버리 활동에서 참으로 동기부여가 불타오르는 콘텐츠가 아닐 수 없지 않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잼버리 메타버스에서 아이템이나 리워드를 모아 현실에서 상품과 교환하거나, K-POP 굿즈와 연계되었다면 어땠을까요?(물론, 모든 전제들이 갖춰진 상황에서겠죠). 적어도 배고픈 대원들에게 초코파이라도 리워드로 제공했다면 뭐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돈이 되는가?(Profitability)
이 콘텐츠는 무려 10억 원의 세금이 들어갔습니다. 물론, 이 메타버스의 목적은 수익화는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의 잼버리 대원들과 대중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알리고 즐기게끔 하기 위함이었죠. 그러한 측면에서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문화를 알리려는 노력’은 열심히 한 것 같기 때문이죠. 물론, 그것만 열심히 한 게 문제인 것 같지만요.
구글 플레이 스토어의 앱 리뷰 중에 제 가슴을 후벼 파는 리뷰 한 문장이 있었습니다.
제발 이렇게 하실 거면 ‘메타버스’ 워딩 좀 빼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냥 ‘온라인 잼버리’ 정도로 해주세요. 이번에도 역시나 느꼈지만, IT 강국 대한민국의 메타버스는 또바타(또 아바타)에서 벗어나질 못했습니다. 홍보 게시물을 찾아보면 주요 워딩이 ‘나만의 아바타’인 걸 보면 뭔가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포트나이트, 배틀그라운드, 리그오브레전드의 유저들은 자신의 아바타와 스킨을 꾸미려고 가상현실 속 게임에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재밌어서죠. 대한민국에서 메타버스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것은 아쉽게도 저와 같은 메타버스 업계 종사자들인 것 같아 무거운 책임감이 들기도 합니다.
지난 글에 이어서, 여러 사건 사고들로 흉흉한 요즘 정세에 아쉬운 메타버스 소식을 들으며 깊은 한숨을 쉬고 있는 메타버스 김프로였습니다.
메인 이미지 출처: ["잼버리? 간척지엔 그늘 없다" 1년전 국회서 경고 날린 이 남자] 중앙일보(The JoongAng) 최기웅 기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2265
관련 기사: [얼렁뚱땅 잼버리 메타버스, 국민 여러분의 세금이 '터지지 않고' 있습니다] This Is Game 신동하(그리던) https://thisisgame.com/webzine/news/nboard/4/?n=173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