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남 눈치로 중간까지 가는 법

by 김레비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며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나를 위한 목표를 세우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지금의 이 위치까지 오게 되었나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이 무너졌을 때 수많은 동료들과 친구들이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 뭔가 잘 살아온 것 같은데?' 그래서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지독히도 남들을 위한 삶을 살아서도 있지만, 집단에서 사회에서 남들 생각을 먼저 하다 보니 항상 눈치가 빨랐던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남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눈치가 100단이다. 남의 세세한 기분 하나하나 신경을 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눈치가 빠를 수밖에 없다. 나 같은 사람에게 눈치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눈치를 보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말을 참 많이 듣는다. "아니 쟤는 왜 저렇게 눈치가 없어?" 심지어 눈치를 일부러 줘도 못 알아채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드라마에서는 책상 밑으로 정강이를 툭툭차고 윙크를 하고 신호를 주기도 하지만 경험상 눈치가 없는 사람은 대부분 이렇게 반응한다. "응? 왜?"


예전에 한 공영 방송에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눈치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사람에 대한 연구가 담긴 다큐멘터리였다. 남 생각이 많은 사람은 기본적으로 남 시선을 굉장히 의식한다. 눈치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굉장히 공감 가는 부분이 있었다. 남 눈치를 굉장히 많이 보고 소심하다는 한 아나운서가 춤을 추는 장면이었다. 이 사람은 마치 나를 보는 것처럼 굉장히 몸치 박치에 가까웠다. 그런데, 촬영장에 불을 전부 끄고 춤을 추게 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전에 춤을 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자신감과 과감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내가 20대 중반에 친구와 처음으로 가요 톱텐이라는 주점에 방문했을 때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 어두운 곳에서 아무도 남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있는 모습이 나에게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그날도 나는 굉장히 어색하게 남 시선을 신경 쓰며 어색한 춤사위를 따라 했겠지만, 남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그 자체가 나에게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다시 돌아와서, 해당 다큐멘터리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교육심리학에 굉장히 관심이 많던 나에게는 더욱 재밌게 느껴졌다. 영상에서는 첫째와 둘째 아기가 나왔는데, 둘째는 첫째가 어떤 행동을 하든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심지어 아기들은 2~4살 남짓되는 아이들이었다. 첫째가 장난감을 다 쓸 때까지 주변에서 계속 눈치를 보다가 다른 장난감에 관심을 돌리는 순간을 틈타 장난감에 다가갔다. 첫째가 그것을 눈치채고 다시 그 장난감을 가지려 하자, 눈치를 슬슬 보며 돌아가는 모습까지 보였다. 통상적으로 첫째보다 둘째가 눈치가 빠르다. 그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체득되기 때문이다. 물론, 첫째가 천성적으로 순하거나 부모의 교육 방식에 따라서 또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첫째가 혼나는 경우를 둘째는 유심히 보다가 반대로 행동한다. 그래야 칭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바로 '비교'이다. 비교하는 순간 첫째는 질투감에 둘째는 승리감을 만끽하게 된다. 부모도 부모역할이 처음이고, 첫째도 첫째가 처음이기에 둘째에게는 칭찬받기의 기회가 많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해라


자, 그럼 생활에서의 남생각 많고 눈치가 빠른 둘째인 나는 어떻게 성장해 왔을까? 학창 시절에는 굉장히 간단했다. 저 선생님을 잘 보고 있다가, 그 선생님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고 좋아하는 류의 행동을 골라서 했다. 예를 들어, 두발 검사에 민감한 선생님을 만났을 때는 귀중한 구레나룻을 반납하고 다음 날 시원한 스포츠머리로 선생님 앞에 섰다. 아직도 기억나는 순간이다. "이야~ 이거 봐라 머리 시원~하니 얼마나 보기 좋니!" 선생님의 신뢰를 얻고 동년 이성 학생들에게는 인기를 포기하게 된 순간이었다. 고등학생 때도 두발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그때 그 시절에는 등교하면서 머리를 이발기로 밀리던 시절이었다. 선생님들이 아침에 옆머리에 고속도로를 내면 어쩔 수 없이 석식시간에 나가서 머리를 밀고 와야 했다. 그때 나도 아침에 교문에서 파란 플라스틱 쓰레기 통에 머리를 숙이고 머리를 밀렸다. 그때 내 표정을 담임 선생님이 아침 조회 시간에 언급했다. "자기가 잘못했으면, 얘처럼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는 그때 "앗 제가 못 잘랐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며 아쉬운 미소를 지으면서 머리를 숙였다. 그 선생님은 굉장히 권위적이면서 학생들과의 유대관계를 굉장히 강조하던 선생님이었기에 그렇게 행동했다.


하루는 학기 초에 우리 반에게 배정된 화장실 청소 1년 당번을 뽑은 날이었다. 누가 할래?라는 담임 선생님의 질문에 약 10초간 정적이 흘렀고 나는 그때 직감했다. '이건 기회야!' 그리고 옆에 친한 친구에게 "야, 이거 우리 둘 이하자!"하고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1년 동안 화장실 청소를 했지만, 덕분에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선생님의 신뢰를 가득 얻고 있다. 그것이 내가 그 선생님에게 준 첫인상이었기 때문이다. 한 영어 선생님은 인사를 지독히도 강조했고, 자신도 모든 학생들에게 인사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그 선생님에게만큼은 죽어라 인사만 열심히 했다. 내가 교생이 되어, 그 학교에 다시 돌아갔을 때도 나를 성실하고 인사 잘하는 학생으로 기억하고 계셨다.




상황을 보고 눈치 전략을 세워라


자 그럼, 사회생활을 어떨까? 학교와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배운 나는 정말 성격이 다른 집단에 있었으나 정답은 같았다. 눈치가 빨라야 한다. 학교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학기 초에 업무분장을 하면서 옆에 있는 베테랑 교사에게 "제가 처음이라 많이 가르쳐주십시오!"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나도 그 업무는 안 해봤어요, 같이 배워요."였다. 나름 배우려는 자세로 말했는데 업무 분담이 명확하고 매년 어떤 업무를 담당하게 될지 모르는 학교 집단의 특성상 돌아올 수 있는 대답이었다. 교사에게 교육에 대한 업무는 굉장히 자율적임과 동시에 책임감이 상당하다. 반대로 행정업무는 다르다. 행정 업무를 할 때, 자칫 잘못하면 교감 선생님에게 불려 가기 일쑤였다. 띄어쓰기와 마침표 하나까지도 프로세스가 명확했던 학교의 행정 업무에서 나는 처음에 많이 허덕였다. 그리고, 그때의 교감 선생님은 굉장히 업무에 적극적이었고 내 부장님은 교감선생님의 눈치를 조금 많이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전략을 세웠다. '아! 교감 선생님과 친해지자' 그래서 교육에 대한 심오한 고민이나, 행정 업무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을 때마다 교감실의 문을 두드렸다. 굉장히 귀찮아하지 않으셨냐고? 어느 순간 그 교감 선생님의 양아들이라는 별명이 생겨버렸다.


회사에서는 어떨까? 위의 첫째와 둘째의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상사가 내 부모라고 생각하면 상사가 첫째에게 하는 행동을 유심히 보면, 둘째인 내가 해야 할 행동이 명확이 보인다, 그럼 그 사람이 원하는 모습과 싫어하는 모습이 나눠질 것이다. 그럼 원하는 모습을 보이고, 싫어하는 행동은 피하면 그만이다. 너무 쉽게 이야기했나? 예를 들어, 상사가 지각하는 첫째를 혼낸다면 둘째는 매일 15분 일찍 회사에 도착해 봐라. 그렇게 신뢰를 쌓다가 보면 어느 하루 내가 부득이하게 늦어도 그냥 무슨 사정이 있나 보다 할 것이다. 눈치 전략의 핵심은 사람의 신뢰를 얻는 것이고,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사람을 얻는 일이다. 상사가 평소에 하는 행동이나 회의 때 하는 말을 유심히 듣다 보면 저 사람이 원하는 사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명확히 구분이 된다. 회사의 미묘한 권력관계와, 사람 간의 갈등과, 회사 전체의 방향성까지 파악할 수 있다면 당신은 눈치에서는 끝판왕이 될 것이다. 모두의 신뢰를 사기도, 모두의 사람이 되기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최소한 적은 만들지 않게 될 것이다.




눈치로 중간을 가기는 쉽다.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저 사람이 어떤 유형의 사람이고 어떤 것을 원하는지 빨리 파악하면 된다. 다만, 나도 이 글을 쓰면서도 현실을 안다. 상대가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내가 상대에게 분노, 혐오 혹은 애정, 관심의 감정이 생기는 순간 눈치 있게 행동하기는 어렵다. 나 또한 사람이라 어떤 상사에게는 굉장히 감정적으로 표출하거나 분노했던 경험도 많다. 반대로, 동료들과의 우정에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집단에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게 될 때도 있다. 그렇기에 내가 굳이 '중간'이라고 표현을 한 것이다. 역량과 재주가 없이는 최고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다사다난하고 살다 살다 별 일이 많은 사회 집단에서 남생각을 통한 눈치만 가져도 중간은 간다.


다음화면, 벌써 '나ㅁ 생각 일기'의 마지막 연재이다. 사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14화를 연재한 것은 아니지만 매일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 남 생각이 많은 독자들에게 힘이 되기보다는 나에게 엄청난 힘이 되었다. 다행히(?) 이 연재가 끝나기를 바라지 않는 열혈 팬은 없기에, 또 다른 주제로 금방 다시 돌아와도 되겠다.


글을 쓰면서 무서웠던 신체적인 증상도, 마음의 불안도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다. 처음엔 되게 사소한 남생각을 나누고 싶었지만, 결국에 내 마음속의 남 생각을 무겁게 꺼내버렸다. 남생각이 많은 나는, 그리고 우리들은 언제까지나 외로운 싸움을 하겠지만 결론적으로 사람과 사랑으로 따뜻한 관심으로 돌아올 것을 믿는다. 우리에게는 다시 달려야 할 뜨거운 월요일이 오고 있다. 장담하는데 눈 감았다 뜨면 월요일 밤 잠자리에 누워 있을 것이다. 그러니 월요병이니 하는 것들은 월요일의 뜨거운 열정으로 이겨내기를!


오늘 하루도 뜨거운 남생각으로 행복한 일요일을 보낸 우리 모든 남생각러 극 ENFJ들에게!

고생했어! 우리 내일도 우리의 모든 남들과 함께 파이팅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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