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시의 불빛이 날 가릴지라도

이제 더 이상은 이 발전된 도시에 마음을 주지 않으려 한다

by 휴사
지금 몇 시야?


주변에 사람이 있다고 착각한 내가 허공에 외쳤다.

대답을 기다려도 누구도 내 말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고 여전히 주위에 만연한 무관심이 무색하게 내 몸에 쩌든 술기운도 나의 뻘쭘함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기어코 술이 약간 달아나고야 말았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냐고?

뭘 하고 있는지보단 왜 여기 있는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여하튼 나는 가공된 빛을 몸에 두르는 걸 좋아한다.

딱히 특별한 용무 때문에 이 거리를 걷고 있는 게 아니란 의미이다.


여흥이라는 목적 하나만을 바라보고 시간을 술에 타 흘려보내는 목 넘김이 기분 좋아!

꼭 모든 행동에 의미가 있어야만 했다고 누가 협박하지는 않잖아?


그런 의미에서 내 몸에 달라붙는 겉멋이 딱히 어색하다 느껴진 적은 없었다.

모두들 겉모습만큼은 끈적하게 꾸며놓고 다니는 그런 길가의 한가운데서 서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만

그렇기에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해 나는 이런 차림으로 계속 배회하길 택했다.



'이런 곳의 하늘에 그려진 저리 먼 이야기를 가진 무수한 별들 따윈 남 얘기처럼 눈에 들지 않는 법이네'


잠시 숨을 고르려 길가에 주저앉아 이미 시커메진 하늘을 올려다볼 무렵에

저따위로 숨 막히는 밤하늘을 쳐다보기 전까지 방금 떠올린 이 생각처럼

새까만 허공도 여느 때처럼 휑할 거라 여겼으나 내 시선의 사각에 원래 그곳에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만큼의 거대한 만월이 있었다.



그런 달이 미웠다.


어떤 도시의 불빛도 그 달에 비할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 몸에 걸친 어떠한 것들도 그 달이 비추는 빛처럼 수수하면서도 순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난 왜 남들처럼 평범하게 달 밑의 밤거리를 배회하지 못하는 거지.

왜 오늘도 뜬금없는 생각들이 떠오르는 걸까.


하지만 가치 없는 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다는 사실만큼은 이전부터 의식하고 있었기에 저 무드등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죠.

달 이상으로 거짓된 것은 없다는 걸.

자신의 아름다움이 아닌 누군가의 빛을 발라내어 흉을 가리는 저 달은 뻔뻔한 거짓말쟁이었어요.

그럼에도 인간이 빚은 불빛이 저 달에 비할바는 아니기에

수천수만의 빛에 하늘이 바래게 물들어가도 저 새하얀 존재감만은 인간의 아성을 가볍게 뛰어넘어있었죠.

당신은 그러한 절경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 도싯덩어리들 사이에서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그래. 저 달이 실은 밤우주 가운데 유별나게 조그마한 녀석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지.

그럼에도 그녀는 밤의 가장자리에서 혼자만 미소를 띠고 있었으니

난 그런 달을 이제야 좋아해 줄 수 있었다.


도시는 내 맘을 뺏는 불빛이었고

달은 그 도시의 불빛이 가린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드디어 알게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