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꽃
차가운 겨울이 당연하게 느껴질 때쯤
지금에서야 발이 피곤하다는 것을 의식했다.
'지친 나날 속에서라도 시간은 결국 흐를 거야'
라는 말은 결국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조금의 위로도 되어주지 않았다.
하나하나 세봤자 내일이 달라진다고 누가 정해주기라도 했는가?
이제는 내가 바뀌어야지.
그딴 다짐 또한 그쳤다.
꽁꽁 싸매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길을 걷는다
추위에 지친 눈은 힘을 잃고
당연하다는 듯이 고갤 밑으로 숙이고 다니는 힘이 빠지는 나날.
그런 내게 꽃잎 하나가 다가와 볼을 스쳐줌에.
그만 흠칫 놀라는 바람에 고개를 돌려 주위를 보고 말았다.
생생히 물결치는 봄의 파도.
무정한 도시가 뻔뻔한 낯짝을 들이밀며 언제 그랬냐는 듯
이미 눈 돌리는 곳마다 피어난 화사함에 의해
놀랐다는 감정이 번쩍거리며 내리쳤다.
나는 내 고통 속에 나를 가둔 것뿐.
세상이 날 가둔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아픔으로 무장한 건 세상이 아닌 나였다는 것을.
코를 훌쩍이며
눈은 놀라서 치켜뜬 채로
목도리를 조금씩 풀어내림과 동시에
순수하게 입꼬리가 올라가는것은 이 얼마만인가.
지금 허공에는 진분홍빛의 이름 모를 꽃잎들이 휘돈다.
오늘도 반복된다
땀에 젖어가는 나날들이다.
근원모를 투지에 몸을 내맡기며
눈앞의 샌드백이 무겁게 나를 짓누르는 현실을 애써 무시하며 끝없이 밀어내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어두워진 주변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곤 나 혼자였으니.
그에 감응하여 뜨거운 숨이 천천히 식어갔다.
왜 식어가는지도 모르는 차분해지는 마음을
피부가 먼저 느꼈다.
이후. 나의 뇌까지 점점 차가워지는 것을
인식할 찰나에
겨우 남의 시선 따위에 신경 썼다는 한심함과 이별했다.
갑자기 주먹이 아파왔다.
눈치채지 못한 사이 내지른 주먹이 샌드백의 실루엣에 꽂히며 갈라진 틈을 벌려내고 있었다.
순간. 따가운 분노가 날 덮칠 것만 같아
반사적으로 눈을 돌렸지만
이름 모를 푸른 꽃잎들이 그 대신 코를 간질였다.
왜 버겁게 느꼈는가.
가볍다 못해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는 꽃잎들로 그득히 채워져 있던 샌드백에
나는 어떤 무게를 느꼈던 걸까?
모래주머니에 들어찬 것이 빠져나가며
서서히 가벼워지듯
내 생각 또한 이리저리 흩날리며 찬찬히 가벼워져갔다.
주변의 탄성이 차츰 잦아든다.
손 끝에서 이어지는 음율들이
그저 사랑스럽게만 느껴지는 때.
지친 몸과 반대되는 기이한 행복이 몸에 스며들었고
본능대로 이어지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긴장했던 힘이 조금 빠져나가며
경쾌한 타력이 휘감겼다.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열기가
사방으로 퍼지며 해방되었음을 기뻐하는 것이
깊게 울렸다.
무정한 도시인들이
지금이 유일하게 박수쳐주는 타이밍.
딱딱한 건반이 부드럽게 느껴질 때쯤
주변이 꽤나 새빨갛다는 것을 그저 넘겨버리고
건반을 멈춰 주변에 방울져 맺힌 내 핏자국들을
쓰다듬을 그 짧은 찰나.
사실 이 혈흔이 허공에 흩뿌려지는 이름 모를 꽃잎이라는 것을 눈이 알아차리자마자
푸른빛 입술이 미소를 머금었다 느꼈다.
타인의 인정이란 건
의미를 부여해야만 존재하는것이라
닳도록 말해왔지만
결국 내 마음에 솔직하지 않았을 뿐이라 끝내 인정할건 인정한다.
주제도 모르는 입꼬리만큼은
지금의 풍경에 충실하게 기뻐하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것은 가장 거대한것보다 더 크다는것쯤은 누구에게도 얘기말고
마음속에 품고가자
한때를 떠올리며 울상 짓는 것도 지쳐간다.
내 현실에 우는 것이냐면 아직 그건 아니다.
나의 과거를 잃어 우는 것이냐 묻는다면
더 이상 그것 또한 아니다.
눈물에 무슨 의미가 있어야만 한다고 정해놨던 것도
딱 어제까지였으니까.
한때 사방에 피어있던 꽃들이 투욱 져가며 내는 탁음조차 아름다운것이 생명의 모습.
그렇게나 싱싱했던 생명들도 조금만 지났다 싶으면 찰칵거리며 빛을 잃는다는 것에
눈물을 흘렸던 것도 부정하지 못하겠다.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벅찼다.
그만 멈췄으면 좋겠다.
모든 생명활동들을 말미암아
내 소중한 것들을 그만 앗아갔으면 바랄 것이 없었는데도. 팔다리부터 힘을 뺏어가는 눈물을 어떻게 멈출까 고뇌하고 또 고뇌했다.
결론에 다다르고 만걸까
눈물을 쏟아낸다는 것은
그 순간에는 매우 선명했던 감정들이 조금씩은 그쳐간다는 과정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다.
나의 일부가 사라지는 걸 붙잡을 수 없는 현실이
더는 슬프지 않게 될 정도로
묵묵히 이어져나가는 일상에
순순히 무너지고 있자니
썩어버린 것들이 새로운 것을 낳는다는 걸 의심하지 않게 됐으니까. 겨우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제 나 자신과 하늘을 떠도는 잔상들을
놓아주어도 되는 걸까?
분명 그래도 될 것 같다고 스스로 눈을 감아보니
비로소 내 새하얀 눈물은 그쳐갔다.
모두의 이야기가 그렇게 꽃잎이 되어 땅에 떨어질 때.
그 꽃잎을 비료 삼아 어디에선가 또 다른 꽃이 피어준다는 것을 자각한다면
썩어가는 꽃잎이, 져가는 사람의 일생이란 것이 비로소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