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교사의 자학

수학은 참 어렵네. 그치?

by 휴사
선생에 '님' 자를 붙여서 올려 말하는 이유란 다른 데에 있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혹은 어떤 것이 부족하여 배움을 갈망하고,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복잡 미묘한 길을 구태여 걸어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과반수가 선생을 바라보는 시각이란 단순히 그런 이유만 있는것은 아닌 것 같아 조금 우울해졌다.
그렇기에 학교라는 장소로 점을 좁혀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나는어디에나 있을법한 공립고등학교에서 상주하고 있는 뻔한 수학교사이다.

그런 나에게는 뻔하지 않은 점이 딱 하나가 있다.

그건 바로 내가 수학이란 과목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요즘 들어 점점 힘이 빠진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 수학처럼 아이들의 눈을 돌리고 자신의 세상으로 도피하게 하는 과목이 어디에 있나 싶다.

공부란 내 생각보다 개인의 재능에 달려있는 문제라서

어렵고 복잡한 것들은 역시나 만인에게 끼치는 영향이 적다 느꼈다.


임용 n개월차라 그런가 역시 나에겐 벅찬 길이었나 싶기도 한 마음이 드는 한편

내 지식의 온상만으로 누군가를 오롯이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시키고 발전시킨다는 그 성취감과 만족감 덕분에 여기까지 걸어온 게 반대로 내가 이 딜레마를 겪게 하는데에 크게 일조하지 않았나 싶다.


나의 본업이자 업은 어디까지나 배속된 교과목 안에서 그들의 평균을 끌어올려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덧붙인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래서야 이 과목을 고집하면 고집할수록 그 길에서 멀어져만 가는 느낌이 나를 지배했다.


텅 비어있는 아이들.

그게 지금 내 눈앞의 현실이라니.


이들을 난 무엇으로 채워줄 수 있을까?

이래서야 '님'자는 그저 굳혀져 버린 호칭일 뿐이잖아.


그렇게 내 안에서 선생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혼자서 열심히 되새기고 있을 때쯤에

청아하고 지겨운 점심을 알리는 종소리가 내 배꼽시계를 자극하며 잠시 일상을 되찾아 주었다.


뭐. 별로 맞이하고 싶지 않은 일상이었지만.






"출석 부를 거니까 조용히 하고 자리에 앉아라. 도대체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얘들아."


1번 수포자, 2번 수포자, 3번 수포자, 4번



말은 이렇게 나오지 않았지만

이딴 것도 출석이라 하고 있는 내 본심에 욕이 나왔다.


대충 부르고 결석의 내용을 후딱 둘러보고 나서 이들을 어떻게 가르칠지부터 새겨야겠다.


그래도 역시 내 마음이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두각을 나타내는 재능덩어리들 중에서도 전 교내를 통틀어 좋은 사례로 꼽히는 몇몇 아이들 빼고는 점수 자체는 잘 뽑아내도 수학 자체를 다루길 원하는 아이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비단 우리 학교의 경우만은 아니겠지.



이 시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과목이지만 어제를 기점으로 나는 수학이 대다수의 아이들에게 끼치는 특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역이용하려는 마음을 먹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요즘 빈틈이 많아진 나를 빗대어 아이들은 나를 만만한 선생으로 여기는 눈치이다.

나라도 내가 그렇게 비칠 정도로 허점이 많아졌다 느끼는 바쁜 요즘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한 명의 담임을 맡고 나서 적어도 내가 속한 반의 울타리 안에서 만큼은 새로이 내실을 다진 나만의 교육철학을 조금이나마 투영해 가르치고 싶다는 일념하에 아무리 교과목에서 조그만 자가실험을 진행해 봐도 아직은 무리라는 점이 톡톡이 티가 났다.


그렇지만 난 오늘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바꾸고 시작하려 한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고 있으려니

혼성의 반을 꽉 틀어쥐고 있는 [이름을 순간 잊었다] 한 여자아이가 옆자리의 아이에게 짓궂은 말투로 조용히 날 깔보았다.



"저 새끼. 오늘도 얼나간 얼굴이면서 눈만큼은 애들을 훑고 있다니까? 기분 나쁜데 신고하면 먹히려나."


난 노안이 와서 귀가 틀어막혀 가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엄연히 들릴 건 들린다고.


쟤는 그저 학생이다. 길을 찾지 못한 학생.




분을 삭히니 그녀가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누가 누가 수학을 포기했나 되짚으려는 시선이 학생들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부담스레 느껴졌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시선처리를 깔끔하게 해내지 못하다니

선생 실격점이다.


그렇다. 수학 선생으로는 실격이다.


하지만 선생이라면 해나갈 자신은 있었다.

지금의 나는 모름지기 그들을 온연한 자신으로 채워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자각하니 약간의 힘이 생겨났다.



칠판에 있는 힘껏 손에 들고 있는 분필을 내려치고

말을 이었다.


"자. 오늘 내가 하려는 잡담만 딱 들어주면 수업을 앞으로 5분만 더 진행하려 하는데

다들 듣고는 있는 거냐?"




솔직히 다 떨어져 가는 집중도와 이목을 다시 끌어올릴까 반신반의하기도 했고

누군가가 고발하여 책임을 물게 될 훗날을 생각하니 쉽사리 말을 꺼낼 수는 없었지만 결국 꺼냈다.


일은 이미 벌어졌다.

과연 몇 명이나 집중하려나. 하는데

조용히 속닥거리던 목소리와 크게 떠들던 한 목소리가 삽시간에 잦아들고

오히려 내 쪽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이목이 내가 n개월동안에 한 번이라도 느껴야 했던 교육환경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조금 슬펐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게 서론이 긴 이야기를 그들에게 꺼내놓았다.




오늘부터 나는 수학시간을 조금 바꿀 생각이고 내가 중심이 되는 이 시간만큼은 각자 사는 이야기나 너희들이 관심 있어하는 생각을 꾸며도 좋고, 숨겨도 좋으니 아무튼간에 타인과 자신에게 얘기를 해보는 거다.

입 밖으로 말을 할지, 하지 않을지는 지금 너희들이 주체가 되어 선택하는 시간으로 한 학기 간 그렇게 진행할 생각이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 포부를 쏟아냈다.



아까의 그 화려한 아이를 포함하여 쉬는 시간마다 힘차게 빨빨대는 남자아이들, 좀 논다는 아이들, 평범의 극치를 달리는 여자아이들, 반에서 극도로 조용한 아이들까지 모두 각자 다른 얼굴로 당황, 불만, 관심, 지루함과 같은 감정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 있게 싫다고 소리 내어 말하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속으로만 내 계획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난 이 동양 문화권에 팽배한 특성을 역이용하여 조금의 시간도 지체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싫은 친구들은 오늘 내줄 필기 테스트와 응용문제 과제를 내줄 생각인데 계속할까?"

라는 식으로 대충 내뱉었던 것 같다.


수학선생이 수학은 가르치지 않고 딴 얘기만 늘어놓는다고 툴툴거리는 티가 보이는 똑똑한 아이들은

그 똑똑한 머리로 주위의 불길을 읽고는 이내 포기하고 책을 자신의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미안하지만 내 의지를 관철하기 전까지는 짬을 내서 개인 교습이라도 해줄 마음이었지만

어차피 사교육으로 단련된 그들의 머릿속에는 애초부터 내가 비집을 틈 따위 있지도 않은 모양새였다.




"그럼 너부터 시작해 볼까. 어떡하고 싶냐?"

나는 반에서 가장 자존감이 넘친다고 여겨지는 아이를 단상에 세웠다.





역시 내 설계와 공식대로 순순히 흘러가는 일은 없었다.

물론 큰 틀은 내가 예상한 바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거부하는 학생도, 내심 불편해하는 학생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학생도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야 당연하겠지.

중간기말의 압박감이란 학년을 거듭해도 조금씩은 남아있기 마련이니

그런 점까지 교권의 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

내 이론의 크나큰 허점임이 분명했지마는

그럼에도 난 한 가지 굳게 믿고 싶은 게 있기도 하여 상황을 지켜보며 자잘한 에러를 조율하고 여전히 개인적으로 중시하는 노터치의 방침을 꿋꿋하게 행하였다.


학생이란 엄연히 자신의 몫을 다 하기 위한 준비의 과정을 겪는 이들이고

학교란 그러한 이들의 집단임에도 나는 쉬이 그런 소수와 다수를 일일이 존중하지 않고 개인의 성분표가 전부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할 때가 더럿이 있다.


그러니 믿고 싶은 것이다.

그들 스스로 어디까지 해나가는지, 또 어떤 오류를 겪으매 그것을 어디까지 파훼하는지.


이렇게 내가 제시한 길의 무정한 점은 마치 수학문제를 풀 때의 느낌과 상당히 흡사했지만

내 관습이 만든 하나의 형태라는 점을 인지하고 그들을 믿기로 했다.


점수를 1번 가치로 삼은 학생들은 때때로 교실을 박차고 나가기도 하는 둥

매 순간 돌아오는 50분은 마치 우등과 열등이 뒤바뀐 기괴한 형태를 취하였다.

그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를 걱정한 나는 나름의 구조활동을 펼치려 하였으나

막상 교실을 박차고선 한다는 짓이란 게 정말로 정직해서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가 반면에 조용하지만 내가 의도한 목적에 부합하여 자신을 찾는 여정에서 흘리는 땀을 아끼지 않는 기특한 학생도 있었고, 자신과 공부의 관계를 보다 팽배히 여겨 삶에 직접적인 풍파를 일으키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깨달음의 욕을 해주었던 그 학생은 내가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교실에 보이는 날보다 보이지 않는 날이 더 많아졌지만

수업에 참여할 때만큼은 특유의 자기주장과 존립감만은 확실하게 보여주었고

내가 지목할 때면 그 자세 그대로 삐딱히 앉은 채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모조리 토해내고 자신만만해했다.

어찌 되건 행동으로도 그 목표를 실행하는 모양이었다.


그 학생의 길은 훗날의 내가 보아도 썩 나쁘지 않았으나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겠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흐르고 시험을 치른 이후의 결과에 어쩔 수 없이 모두가 주목할 때가 찾아오면

확실히 사교육에 힘쓰지 않는 학생들을 제외한 수학과목의 평균이, 아니 전체적인 교과목의 평균이 낮아진 게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서 교권을 가진 자들의 의문이 피어났지만 그 원인 제공자인 내 행실을 들키지는 않은 낌새였기에 나는 그대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물론 이전보다 교사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일이 잦아지긴 했다.]


이 얘기와는 별개로 하나 각설하자면 역시 아이들은 가끔씩 내 예상과 기대를 넘을 때가 많다고 느꼈다.

역시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고 수학이란 소수가 점유하는 학문이라는 점이 꽤나 크게 작용했는지

학생들의 떨어진 집중력을 다시 끌어올려주려는 노력을 살짝 보태니 다른 과목의 수치는 정상의 궤도에 올랐으며

평균은 낮고 최고점만 높은 수학답게 자신만의 공부법을 개발한 모범생 분들의 교내 안팎을 가리지 않은 노력 덕분에 오히려 평균이 유지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아마 이 기점 이후로 내가 선생님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일은 없어졌던 것 같다.

여기까지 할 수 있었던 힘의 작용은 어쩌면 과반수가 틀에 박혀있는 지루한 수학수업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았던 마음이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조용한 학생들, 지극히 평범한 학생들, 겉으로 나도는 학생들도 왠지 모르게 겹치는 부분이 있었는데

다들 확신에 찬 결론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는 내 분석노트에 여실히 드러났다.

그것이 당장에 옳든, 그르든 간에 그들이 길을 잡아낼 수 있는 힘을 얻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길이 비틀린 학생들을 잡는 것 또한 나의 일이기에 걱정은 오롯이 나의 몫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라고 하였던가?


급작스럽게 교장의 정보망에 내 일탈의 증거가 확보되어 타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말이 전근이지 사실상의 강제퇴출.

쉬쉬하고자 붙인 칭호가 전근이자 동시에 내가 저지른 죄목이 [큰 죄라 하기도 뭐 한 직무유기이기에] 가볍다는 주관적인 이유였겠지만 말이다.


내 인생엔 이렇듯. 언제나 급전개로 흘러가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정말 거슬렸던 것은 앞선 이유가 아닌

이렇게까지 학생들에게 장난질을 쳐놓고 내 손아귀를 벗어나기까지 소임을 다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 정말로, 정말로 아쉽고 동시에 미안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누군가의 고발이 아닌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태도의 변화에서 각자 의문을 품은 교사들의 입담을 캐치한 교장의 빈틈없는 면모 때문에 발각된 뒷배였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의 패인이라고밖에 칭할 길이 없었으니 더는 내 행동을 후회하지 않게 되었다.



난 이후 교사로서의 일에 책무를 다하지 못한 채로 전전긍긍하며 지내다 그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고
짧은 교직생활 이후로도 다시는 재직하려 하지 않았다.
역시 선생노릇이란 참 오묘하고도 힘든 것이라고 다시 한번 느낀 대목이 너무 크게 와닿아서라고
지금의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그럼에도 역시 남아주는 것은 한때의 제자였던 이들의 성의가 담긴 소식들이었단다.
비록 이 선생은 한심했지만 내가 한때 사랑했던 수학으로써 너희를 만나는 계기가 성립되었고
감히 너희들을 가르치고 간섭할 기회가 있었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는 것처럼 불모지의 어려움에도 양면성이 있었지.
그때 당시 미숙했었던 내가 가볍게만 던졌던 그런 과제들에 너희의 미래가 얼마나 관통되었을지는
모르겠다만 모두 내 탓을 해도 충분하다 느꼈다.
정말로 그건 너희한테 못할 짓이었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내 부족한 언행을
다들 하나의 추억이나 술감으로 삼아주었고 그에 다행이라고 여기는 요즘이다.

물론 어디에나 예외도 있다는 점이 내가 남긴 오점이자 부족의 결과이지만 말이다.
교사란 타인의 인생을 바꾸기도 하는 죄 많은 직업이니
처음부터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네.

여하튼 나는 그때 너희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
교사이지만 나도 학생이었어.
말 그대로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있었다는 것을. 너무나 소중히 여기는 요즘이다.
이렇게 보니 우리가 남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란 게 뭐 딱히 별게 있을까 한다.

너희 모두에게 그 시절의 나는 너희가 느낀 각자의 삶의 가치를, 이 단 한마디를 이해시켜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