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에, 스토크스의 일화담

조그맣기에 바라볼 수 있는 거야.

by 휴사


매혹적인 가시덤불에 꿰인 나비 한 마리의 애달픈 날개가 꽃의 줄기를 뒤흔들었어.

관점에 따라 크다면 클 생명의 소멸이 엮여있다지만

까짓 눈에 비치는 식물이 조금 흔들린다고 누가 신경이라도 쓸까?


우연히 보았어도 지나칠만한 작은 이의 울부짖음 따위는

쿵쿵거리며 울리는 멸렬한 발걸음들 사이에서 산산이 흩어졌으나

이토록 부산스러운 길을 둘레둘레 따라 걷던 작디작은 한 소녀만이 탄식을 느낀 모양이었지.




스토크스는 그의 말에 조금씩 집중했다.

자신이 떠올린 이 생각이 빗나가진 않을까 하며.






휙휙 지나가는 사람들은 장미가 연출한 진홍에 쉬이 현혹되지 않았다.

뒤늦게 자신의 본능에 모멸감을 느꼈던 것이 바로 조금 전의 일이었지만

이제 그런 념은 어찌 되든 간에 상관없으니 누구라도 나에게 시선을 돌려줬음 하는 맘으로 탈바꿈했다.


뭐, 그래봤자겠지

동류를 신경 쓰는 것은 동류밖에 없다.

내 몸을 이루는 것들이 너무나도 얇기에 나와 같은 모습을 띈 그들은

이런 나를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겠지.

서로 챙겨줄 여유 따위가 있는 건지 모를 이리도 연약한 형태에

내심 환멸마저 느껴버렸다.


'난 왜 나비인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아 자학적인 말을 꺼내보았지만

당연히 번데기적 시절로는 돌아가지 못했다.


그런 생각들이 레코드처럼 지나쳐지고 바람조차 날 풀어주지 못하는 현실에 낙담할 무렵에

조용한 시선감이 느껴졌다.

그 시선이 왠지 모르게 섬뜩하게 느껴졌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의문하던 중

이내 그러한 감정이 발생한 근원적인 원인은

결국 삶의 벼랑에 내몰린 내 연약한 심경이 만들어낸 불안의 형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네 군데의 눈동자가 서로 마주치고 나서야 그 두려움이 왠지 불길하지만은 않게 느껴졌지만

여전히 내 상황은 미욱하기 그지없을 뿐이었다.




무언가 건조한 내음이 좀 전부터 내 감각을 찌르는 것을 무시하려 했는데

과연 그랬나.

멀리서 어떤 소녀가 날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정황은 이러했다.


몸은 절망했다지만

내 솔직한 눈은 활로를 찾아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역시 지나다니는 사람들에 기대를 걸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잘도 채가는 주제에, 잘도 핀에 고정시키는 주제에 이럴 때야말로 관심조차 가지지 않다니.


그렇다면 날 짓밟아

생명이 끊어지기까지 겪을 수밖에 없는 이 지겹고 두려운 고독함을 빠르게 끝내줬으면 했지만

역시나 나는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주제에 불과했다.

그러길 잠시. 그녀의 존재감이 날 둘러싼 것이다. 주변의 공기를 건조하는 감각이 나의 몸에 훅 끼쳤다.



페로몬? 아니다. 비슷했지만 이건 이른바 짙은 향기였다.

그 끝에는 확실히 남들과는 다른 곳을 쳐다보며 걷는 이가 있었으니

그녀의 시선이 내가 있는 곳과 가장 가깝다는 것을 느꼈을 때 희망이 생겨났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걷지만 왠지 모르게 주변을 자꾸 둘러보는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가 분명 다른 이들과는 무언가가 확연히 다르게 느껴졌다.

그래. 마치 죽어가는 벌과 같다고 해야 하려나?

목적지를 정하고 나아가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고 확신했었다.


그런데 왜일까? 얇은 날개부터 퍼지는 두려움이 몸을 온통 휘감았다.

그녀가 날 바라보건, 바라보지 못하건

찢겨죽거나, 아사하거나 결국 죽는 건 죽는 거다.

역시 이런 때엔 부정적이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몸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제 이 경치를 보는 것은 역시 오늘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체념하에 이기적으로 빛나기만 하는 세상을 놓아줄 무렵.

내가 주시했던 소녀가 갑작스럽게 멈칫거리는 낌새를 보이더니 내가 있던 쪽으로 급박하게 달려주었다.

어떻게 된 걸까. 설마 사람에게 구해지는 것일까?

내 동류들조차 나를 모른 체하였는데.

아마 생각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착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여기서 죽는다는 사실은 변함없겠지.







미욱한 바람결이 내 쪽으로 몰아쳤다.


그야말로 의외다.

장미들이 펼친 서슬 퍼런 가시밭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걸치고 있는 옷이 피부와 함께 찢기는 것을 내버려 두곤

고사리와 다를 바 없는 그 두 손으로 앞길을 막는 것을 꿋꿋이 밀어내며

인간만이 기록한다는 무심코 회피하고 싶어질 고통도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멈출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지금 내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근거 없는 기대는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눈이 마주치지 않았는가?


이윽고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하지만 역시 어느 모로 봐도 소녀가 날 구할 이유는 없었다.

역시 죽는 건가. 부정적인 감정이 긍정을 밀어내고 먼저 손을 뻗쳤다.

생사여탈권이 저 여자에게 달려있으니까 그런 수렁쯤이야 이미 익숙해졌지만 이상하게도 난 진득한 늪과도 같은 부정적인 감상점점이 휘감겼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는 최악만큼은 역시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러한 감상과 동시에 들어왔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인간은 감각을 공유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동물이라 조금도 손해 보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분명 누군가 내게 그리 말해줬었다.


그렇다면 역시 날 훔치기 위해서?

아니. 난 그렇게 희귀하지 않은걸.

오히려 내게는 그녀 쪽이 더 존귀하게 느껴졌다.


어찌 됐건 저렇게도 비련한 모습을 보자니 조금 미안했다.

내가 장미에 현혹되고 말아서 결국에 나 이외의 어떤 이를 고통에 빠트리고야 말았으니까.

어쩌면 내 시체라도 기꺼이 내주어야 하는 걸 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러길 바랐다

적어도 내가 자유로이 날아다녔다는 현실을 한 명이라도 더 알아줬으면 하는 이기적인 심보가 바닥을 드러낸 별스럽지도 않은 생존본능과

자기주장의 이기심에 떡칠된 감정뿐이 남아있었다.,


그러던 찰나에

그녀가 점점 다가왔으며 동시에 그 모습이 눈에 가득 차올랐다.


이제야 그녀가 날 보게 된 연유를 이해했다.


가까이에서 나와 비교하자면 중전차와 같이 느껴지겠지만 저 멀리에서 실루엣으로만 보았을 때와 매한가지로 그녀의 몸은 그녀 주위의 인간들이

곧은 나무로 보일만큼 여려만 보였다.

그렇게 자그마함에도 고개를 땅에 박고 걸으니 마찬가지로 땅에 묶인 나를 보게 된 것은 아닐까?


그렇게 아차 하는 사이에 그림자가 드리웠고. 나는 정말 오랜만에 천천히 압도당했다.

비록 나보다 거대한 만물들을 빗대어 천적이라 칭하지는 않지만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은 언제나 두렵도록 거대한 것들이었으니까 그러한 관심에 단박에 감사하길 바라는 건 무리였다.


'끝'

본능적으로 찢길 각오부터 끝내는 나 자신이 너무나 작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순간이었는데 거대한 손의 끝이 꿰인 내 날개에 조심스럽게 닿았다.

마치 나무토막같이 거대한데. 사람의 손이라는 거. 이렇게 세밀한 기능을 가진 것이었다고?

아무튼 지금은 이런 생각 자체가 사치다.

이제는 모든 것이 시원하게 내 몸에 닿았고

새삼스럽게 내가 자유롭게 날아다녔다는 게 굉장히 오래전의 일만 같았다.



눈물은 흘리지 않기로 했다.

고마웠으니까.

그녀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것 같다.

왜일까? 그리도 아파 보였는데.


오히려 미안해진 나는 차라리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을 내비치길 내심 원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거대한 손에서 맥박 치는 약동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내 몸을 둘렀다.


나라는 비루한 생물에겐 치명적이게만 느껴지는 손길임에도

나는 생을 이어나가야만 한다는 의지를 잠시 미뤄두고

먼저 그녀에게 감사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 손이 아니었으면 난 여기에서 썩어갔을 테니까.


사람에게는 그런대로 아름답다 여겨질 만한 몸짓으로 성의의 노고에 화답해 주는 것이

그녀에게 표현하는 고작 그뿐의 감정이지만

처음으로 웃음을 품은 얼굴에 난 더 이상 눈물을 바랄 수 없게 되었다.


내가 그러한 감정을 느꼈고 그와 비슷한 타이밍에

타오르는 듯이 따듯한 그녀의 손에서부터 더 이상 날 걱정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이렇게 강인하면서도 섬세하기 그지없는 그녀도 인간들의 사이에서는 작고 작은 존재라는 것이 새삼 내 주제를 무시하고 나에게 와닿았다.


이 이후로 내게 얽힌 모든 인과에 비로소 감사하게 됐으니

이제 그런 감사함을 안고 나는 날아가야만 한다.


이까짓 찢어진 날개. 그녀의 옷과 거친 피부도 찢어졌는데

이 이상으로 뭐가 더 날 아프게 할까.


그럼 안녕히.


이윽고 푸른 날개와 새파란 눈동자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창공 속으로 아름다움을 흩뿌렸다.



"세상에는 무한한 배움만이 있다는 것을 몸소 실감하는 요즘이라 그런지

우리의 근간인 생명이 가진 우연성이란 어떠한 이론만으로는

서술치 못할 세상의 기초 구조를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하네.

우연이 우연을 이어주고 그것이 매번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을 볼 때 사람의 모든 무의식에도 일련의 이유가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고뇌한다네.

이 연쇄를 어찌하면 좋을까. 스토크스?"




"자네만이 그렇게 정의하는 것이 아니야.

살아 숨 쉬는 것도, 그것이 죽어 스러지는 것도 구분할 수 없이 아름답고. 역시 그 모든 것은 우연하게 피어난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으니 나 역시 그 관점에 십분 동의하네.

그러한 점에서 죽어가는 생명이란 굳이 눈을 크게 뜨지 않아도 왠지 모르게 보이는 것들 중 하나이기에

인간만이 누군가의 죽음에 무심코 발을 담그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도

딱딱했던 자네가 언젠가는 느끼게 되면 좋겠다 생각하던 참이었어.

그렇기에 이러한 아름다움들이 또한 우연을 타고 온연히 기록될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일까. 나비에

그러니 그러한 연쇄에 너무 깊게는 빠져들지 말게. 어차피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일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