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글을 읽는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돈? 명성? 사회적 지위? 부양할 가족? 강박관념? 죽음?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이 담겨있는 삶?
내 모든 것을 뒤흔드는 세상에서
내가 이전까지 고수하던 형태는
그저 나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서있기만 하는 무기력의 극치를 달리는 행동방침이었다.
그렇게 오늘도 여기에 서있다.
나와는 명백히 다른 좌표에 서있는 타인을 그리워하며.
소중한 것들이 나와 다른 시간에서 흘려지는 것을 느끼면서 울부짖는 게 마땅할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미소로 그들은 그들 손에 매여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의 지금에 충실할지.
전자의 경우로 행동했었던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답을 내놓았다.
내 관할구역을 벗어난 소중한 이들과 소중한 시간도 그들만의 영역이 있는 법.
내가 그들과 어떤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던 사람은 언젠간 다시 만난다.
처음에는 몰랐다. 그게 단 말 한마디로, 단 한 번의 용기로, 단 한 번의 죄악감의 승화로 끝내 해결에 가까워지게 될지 전혀 몰랐다.
나는 몰랐다는 변명으로 멀뚱 거리며 멍청하게 서있기만 했던 것이었다.
발을 움직이는데 필요한 것은 격통이다. 그러나 그 격통은 딱 한 번에 그친다.
단 한 번의 봉우리를 넘어섬으로써 우리는 다음 절경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절경에서 한번 몸과 마음을 쉬어냄으로써 다음 봉우리를 바라볼 여유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거쳐온 절경은 비록 나만의 공간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내가 넘어온 봉우리에 찍힌 발걸음들이 나만의 공간이 될 때도 있고, 바로 벗어나버린 시작점이 나의 존zone이 될 때도, 하늘에 떠있는 구름들이 만든 그늘이 그러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그 공간은 모든 것들에서 분립되어 있는 공허한 곳이지만 달리 보면 나의 생각으로 물들어 있는 유색의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에게는 그 공간이 하얀 종이와 텅 비어있는 화면 같은 부류의 무채색의 표상인 백지공간이다.
보기만 해도 무언가로 덧칠하고 싶은 그런 평면이란
나를 온전하게 편한 상태로 이끌어주는 객체로써 자리매김하였다.
가끔 나를 포함하여 자신의 영역을 만들 필요성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목표점만을 눈에 담고 올곧게 살아간다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다들 눈이 충혈되는 것을 안배하고 있다.
다들 자신의 영역을, 공간을 따로 만들어 두지 않는다.
그게 우리 초년생들의 모습이다.
딱히 쉬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쉴 공간을 마련하라는 소리도 아니다.
어차피 이런 식으로 말해도 자신을 땔감 삼아 저 하늘을 바라보는 젊음에 취했을 테고 동시에 쉽게 게을러지는 미숙함을 담고 있는 어린 사람들은 그리 쉽게는 타인의 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니까.
그저 나만이 혼잣말을 주절거릴 뿐이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말이야. 순수하게 무언가를 잃는 법은 없어.
잃는다는 것은 그 순간에 나도 모를, 알아채기도 힘든 것들이 또다시 스며드는
반복일 뿐인걸.
연중무휴의 삶에서 조금은 네가 흘러내리게 되는 그날이 오기를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