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이제. 베스트

죽어감에도 갖추지 못했던 소양

by 휴사

격동하는 발전이 우리 몸에 어지럽게 투여되는 요즘

글씨의 장점에 대해 생각해보는 이야기.





삶의 많은 부분에서 낭만이 결여되어 간다는 소리가 요즘 들어 꾸준히 들려온다.

그 낭만은 어디에서 흘러나오는 것일까?


급속도로 발전하는 우리의 삶의 모습에 이 단순한 문제의 힌트가 있다고 생각했다.

발전이란. 결국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생물적으로 불편하며. 그렇기에 비효율적이라 생각되는 부분들을 사람의 본능에 맞게 개선하는 작업을 거치는 것인데

정작 그 옛것의 감성을 우리의 몸은 아직 잊지 못하고 있었다.

이 점에 미루어 보았을 때 사람의 지각이란 게 사람의 수용능력을 한참이나 앞선다는 소리인데

그렇다면 과연 효율적인 것만을 추구하여야 하는가?

아니면 단호하게 러다이트 운동과 같은 과정을 거쳐내어 발전을 깎아내야 한다는 소리인가?


이 주제 자체가 사람은 결국 타협점을 구축하여야 하는 존재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느낀다.

그냥 우리의 몸이 가두고 있던 좋다고 느꼈던 옛것들을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개량하다 보니 가랑이가 좌우로 찢어지는 과정이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수용시켜야 심장마비가 오지 않는 냉수욕처럼 우리의 삶의 방식 또한 결국 큰 틀에서 그 핵심을 돌파하지 못했다는 증거인 것이니

이제 심플한 모습들이 가진 장점을 다시 바라봐주어야 할 때는 아닐까?

정말로 무지의 시대가 오기 전에 말이다.


난 그에 대한 대표적이자 가장 쉬운 예로 종이를 선택했다

사실 내 깊이로는 딱 거기까지만 설명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종이만큼 극적으로 최신 디스플레이의 맞은편에 서있는 객체도 없는 법이니 매번 내 인식선에서 가장 잘 통하는 예시이다.




디스플레이란 참 편리하다.

이 적은 부피와 외부입력 개체만으로도 종이가 가진 일회용의 한계를 수억 배는 뛰어넘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만큼 수억 배는 더 어지러운 법이다

그만큼. 우리는 핵심을 잊고 이리저리 화면에 띄워지는 대로 휘둘린다.

그저 재미와 새로움만을 좇으며.


그렇다면 대체 종이의 장점은 무엇일까?

다른 수십의 단점을 배제하고라도 종이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이 모든 단점을 잠재울 정도라고 생각한다.

많은 정보량을 투과하는 디스플레이와 정반대로 단 하나의 내용만을 한 장에 담고 있는 특징이

그 본질을 해석하기 위해 우리의 뇌를 끊임없이 굴려준다는 단순 명료. 절대불변의 장점 하나만을. 현대에 와서도 온연히 지니고 있다는 것이 종이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이런 차이를 가진 종이와 디스플레이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함께했으니 거진 인생에서 이미 1대 1의 비율을 차지한 종이가 수십의 단점을 가진 채로 내 삶에 끼어든다는 조건 자체가 불합리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래서 나는 재미만을 좇는 내 본능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몸의 칼로리를 거의 소모하지 않아도 수천 가지 내 뇌를 채워주는 한 손안에 들어오는 마법에 그렇게 매료됐다.


그래서 나는 인생 처음으로 군대라는 집단에서 삶을 얽매인 채로. 중하다 여긴 모든 것과 분리되었을 때, 그렇게 공간이 바뀌어서야 눈을 환기시킬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공간부터 바꿔야겠다)


'정말이지 세상은 선명했다는 것'

수년간 잊고 있던 사실이 몸을 직접적으로 훑고 간 순간을 군대는 선사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좀 더 나를 원하게 되었다는 게 참 신기하다.


지금까지가 책이라는 수수한 것에 손을 붙이게 된 과정이다.


그런 데서 책을 읽는다는 게 역시 뻔했다.

종이책은 역시나 아무리 뒤집고 구워삶아봐도 한 자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지금에 와서야 그 사실에 정말로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