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가는 저 시간 잡아라!

벌써 죽으려고?

by 휴사


오늘도 같잖은 병 때문에 조금 아팠다.

그럴 때마다 다른 이들에게 기대야 할 때도, 몸을 맡길 때도 있을 정도로 심각하게 다가오는 그런 병.

이대로 병을 방관할 수밖에 없는 나에게 언젠가 손도 하나 까딱하기 힘들 때가 올 거라고 내 몸이 이렇게 외치고 있어 그에 걸맞은 반응을 보여주려 한다.

그에 대한 준비이자 미래에 대한 비관과 희망.

그리고 내 주변의 멀쩡한 이들과의 상호 관계에서 오는 부정을 최대한 털어내고자 하는 노력을 휘갈긴 글을 천천히도 적어내려 갔다.




나는 건강한 자의 입장과 병자의 입장에 동세대에 서본 흔한 사람이다.

덕분에 운이 좋게도 나는 이것저것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남에게 공감하려면 먼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라지만 구태여 돼 보기도 귀찮고 애초부터 타인의 입장에 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극과 극을 이렇게도 빨리 체험한 나는 그 각기 다른 세상을 미리 체험하고 그만큼 깊게 새길 수 있었으니 얼마나 운이 좋은 케이스인가.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 죽을 준비란 그렇게 어렵게 다가오지 않았다.


가장 먼저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고 느꼈기에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에세이를 써보았다.

에세이라는 것은 산문의 형식을 따르는 글의 한 형태인데 그렇게 모든 것을 담는 글이 쌓여가다 보니 자연스레 자신의 다각적인 면을 효과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다음은 자신을 사랑하는 감정을 품을 차례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부터 싫어하는 것까지 한 번씩 거쳐보며 그것들에 대한 내 솔직한 반응을 기록하고 관찰하며 공감했다.

나에게 공감한다는 말이 웃기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신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는 때가 종종 있어본 삐뚤빼뚤한 내 성격상 자신의 마음에 공감해 본 적과 부정해 본 적이 비슷한 비율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그러고 있자니 이렇게 내가 남겨온 족적들이 내 삶 이후에도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했고 그 희망찬 면에서 비로소 잠깐의 위안을 얻었다.

그 찰나의 위안감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끝없이 쓰고, 새기고, 그리고, 움직여야 했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말이다.

그렇기에 내 입에서 힘들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되는대로 체크를 하는 습관을 기르려 애썼다.

그렇게 느낄 때가 내 한계의 벽이고 그 벽을 넘을 때 나는 삶의 약동을 느끼는 타입이니 이러한 습관이 한번 더 나를 정제한다고 느껴서였다.

이런 일상을 만드는 소중한 부분들 덕분에 잊을만하면 날 괴롭히는 심장의 약동과는 다른 의미로 심장이 뛰었고 그런 것들이 격통을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으로써 작용했다.


그리고 앞선 무엇보다 점점 중요해질게 하나 더 남아있다.

비록 내 입장도 중요하다지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나와 세상의 한 부분을 공유하는 하나 다를 것 없는 인격체로써 인정되어야 한다고 정했으니 그들의 내게 꺼내는 소리에도 나름대로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 게 아닐까?

일방통행적인 생각은 줄이고 각자의 감정이 일어나는 이유를 공감하려 매 순간을 선명하게 인지하며 살아가려 노력 중이고 그들이 내 병에 느낄 부정적인 측면을 꺼내놓고 다니지 않았다.


이러한 행동들이 결국 죽음 앞에 평등해질지라도

나에게 최소한 자신의 마지막 모습은 정할 자격이 부여될 때까지 반발하는 이 모습만큼은 여기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순간에도 이 세 가지 부분들을 끝없이 잊고 인지하며 살아간다.

때론 약아빠진 내 심성이 날 약하게 만들어 무지렁하게 떠들 때도 있지만 때로는 이런 면들을 정면으로 부각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도 요즘 들어 자주 보이게 되었다.

역시 아직까지도 부족한 내가 성장해 나갈 활로가 드디어 보여감에 근원모를 활기를 얻게 되었다는

별것도 아닌 이야기였지만 당신이 여기까지 봐줬기에 생기가 도는 글이 됨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혹여나 아픔에 지쳤다면

노력으로 뒤덮고 뒤덮어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하게 되는 때가 오면 좋겠다.


"이런 나를 더 이상 아픈 이로만 바라보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