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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파인 Sep 20. 2023

하우스홀릭 22 친구들이 오다

집에 살다

    

  모두들 바쁘다만나서 여유롭게 먹고 이야기하며 노는 시간을 만드는 게 쉽지 않은 일상이다도시에서 뚝 떨어져 있는 주택에 살게 되면서 서울에서의 친구들 모임과 달라진 것이 있다내 경우에도 대부분의 모임은 서울에서 이루어진다아직도 열심히 만나고 있는 대학 동창들 모임은 여러 명이 만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 있는 식당을 찾는데서 시작한다나이가 들어가니 목소리가 커지고 그러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열려 있는 장소보다는 별도의 룸이 있는 장소에서 모이게 된다주로 점심 식사를 함께 하는데 10여 명 이상이 모여 함께 식사하고 그동안의 소식을 전하고 밀린 수다를 떨고 브레이크 타임이 있는 3시경 헤어지는 게 루틴이 되었다물론 아쉬움이 남을 경우 한 군데 옮겨 카페에서 남은 친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 외의 모임은 공식적인 약속들이 대부분이니 친구들과의 이런 모임이 가장 편안한 만남이기도 하다

  

  사실 이제 집에서 모이는 모임들은 거의 없어지는 것 같다그런데 전원주택에 살고 있으니 가끔씩 친구들이 집에 찾아와 함께 모이는 경우가 생긴다.  집을 처음 짓고 나서는 이리저리 가까운 사람들을 팀별로 초대해서 바비큐와 맥주나 와인 등을 나누는 모임을 자주 했던 것 같다그러나 이제 17년 차 전원주택 살이를 하다 보니 이런 모임도 점점 줄어든다.  두릅이나 봄나물이 나올 때계곡이 그리울 때단풍이 한창일 때 가볍게 야외에 나오는 겸 해서 친구들이 방문하게 될 때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친구들이 오랜만에 방문하게 될 때면 공자님의 말씀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        

 집을 방문하는 친구들 모임은 대략 한 두 달 전부터 조율해서 이루어지게 된다평소 부지런하지 않은 나도 친구들이 올 때쯤이면 이리저리 집 안팎을 살피게 된다바쁘다는 핑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마당과 구석구석 공간을 틈틈이 살피기 시작한다얼마 전에는 남편 대학 동창들이 점차 퇴직하면서 모처럼 만에 여유롭게 1박 2일로 10여 명이 마치 대학생 MT 하듯이 모이게 되었다부부 동반으로 오는 친구들도 있었고 혼자 오는 친구들도 있었다남편 단톡에는 1박 2일 일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계곡에 가자산책을 하자는 등의 제안과 색소폰을 가져와 연주하겠다는 친구도 있고...  내가 보지는 않았지만 논의를 들으니 살짝 설렘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오가는 것 같았다.  모임이 정해지고 나니 우리 둘은 이곳저곳  살피기 시작했다.

 

  오래된 집이라 여기저기 낡은 곳이 제법 있다그래도 여유 있는 날을 잡아  하루는 창문을 닦고하루는 잔디를 깎고하루는 침구를 살펴보고데크도 깨끗이 청소하고여기저기 구석에 쳐놓은 거미줄도 거두어 내었다거미줄은 사실 보기에는 별로 좋지 않지만 전원주택에서는 특히 여름철에 날벌레를 자연스레 막아주는 유용함이 있어 가능하면 내버려 두는 편이다그래도 낯선 도시인들에게는 거북할 수도 있어 슬쩍 거두어 내는데거미들이 워낙 솜씨가 대단해 하루 나절이면 또 다른 곳에 가서 멋진 집을 지을 것이다친구 맞이를 위해 이렇게 알뜰살뜰 그동안 살피지 못한 곳까지 정리하니 제법 집이 깔끔해졌다친구들이 도착하는 날에 주변에 있는 꽃 몇 가지 꺾어 작은 꽃병에 꽂아보니 그럴듯하다. 사실은 도라지꽃과 부추꽃이다.  

   

<도라지꽃과 부추꽃>

                                                  



  친구들이 왔다전원주택에 모이면 이야기보다 먼저 둘러보게 되는 것은 텃밭에 있는 배추,  상추 같은 작물을 둘러보는 것과 훌쩍 커버린 나무들을 살펴보는 게 우선이다.  나무와 풀 그리고 걸어 다니며 나누는 이야기들은 식당과 카페에 앉아 집중적으로 나누는 이야기들과 결이 다른 것 같다두런두런 흘러가는 이야기는 이야기대로커다랗게 울리는 웃음소리는 웃음소리대로 공기에 가득하다너무 열심히 이야기할 필요도 없고너무 열심히 들으려고 집중할 필요도 없다이야기 나누며 눈에 들어오는 풀과 나무 때로는 벌레들까지 끼어들도록 여유롭게 말들을 흩트린다.  데크에 있는 탁자에 앉아 바람을 느끼거나 빗소리를 느끼는 것도 좋고먼 산을 바라보는 것도 괜찮다연신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친구를 보며 크게 웃다가 잠시 일어나 마당을 거닐어도 괜찮다.  이야기 사이사이 각각 느끼는 여유로운 공백이 계속 이야기를 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공감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차 한잔 나누고저녁 늦게 맥주 한 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눈다. 깜깜한 밤이 정겹게 지나고 다음 날 아침 둘레길을 함께 걸었다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자연과 함께 지낸 1박 2일이 지나고 모두들 떠났다먼 곳에서 친구들이 오니 남다른 즐거움과 편안함의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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