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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파인 Aug 20. 2023

하우스홀릭 21. 바람이 지나가는 집

집에 살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서울의 주거공간에  적응하는 게 힘들어지고 있다.  이러저러한 일로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서울에 가서 머물러야 하는데  요즘 같은 날씨에는 에어컨 없으면  견디기 힘들다. 건물은 온통 유리로 되어 있는데 창문은 작고 바람은 차단되어 있어  오직 선풍기와 에어컨에 의지해 지내야 한다. 그런데  지난주  딸아이 집  에어컨이 덜컥 문제가 생겼다.  대형 오피스텔  건물인데 전기 사용량이  많아서 그런지 에어컨을 켜면 차단기가 툭 떨어지며  전원이 멈춰버린다.  관리실에서 왔다 갔지만 특별한 해결책을 주지 못한다.  A/S를 신청했더니 일이 밀려서 한참 후에나 올 수 있다고 한다. 선풍기를 켜놓고 잠을 청했지만  무언가 답답한 더운 공기에  갇혀버린 듯 정신은 몽롱하고  자꾸 잠이 깬다.  작은 창문이지만 열어 놓았더니 옆집의 에어컨 실외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고, 뜨거운 공기를 내뿜는다. 평소에 땀도 안 흘리고  더위를 안타는 편이라고 자부했건만  답답한  주택 구조와 공기에 영 적응이 안 되고 힘들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정신 차리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바깥으로 나왔다. 도심 한복판에  이제 막 아침 8시가 넘은  시간인데 갈 데가 있으려나  생각하며 그저 바깥공기 느끼기 위해 나왔는데 근처 대형 카페가 영업을 시작했다.  들어서니  벌써 노트북 들고 나온 젊은이, 아기들 데리고 나와  간단한 브런치를 먹는 가족들이 제법 많다.  참  이런 풍경이라니.

   

   우리 집에서는  여름 내내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낸다. 안 그래도  일반 주택보다 창문이 많은 집이라  이리저리  열어 놓으면  바람이  알아서  이리저리 지나가며  공기의 청량함을 유지해 주고  선풍기 가볍게  켜놓으면  요즈음   더위도 버틸만하다.  이곳에 살면서  자연환경과 아무래도 많은 교류를 하게 되지만  온몸으로 체감하는 것 중 하나가 바람이다.  바람은 다양한 세기와 움직임을 갖고 있다.   봄에 살랑살랑 부는 바람은 이제 막 올라온 풀들을 살살 건드리고 내 마음도  살랑 건드린다.  여름은 무엇보다 바람이 절실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계절이다.   찌는 더워 속에서 바람이  슬쩍 불어주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더구나 텃밭에서 일할 때 바람이 불어주면 더위와 흐르는 땀에도  불구하고  상쾌한 기분이다. 태풍  소식이 들려오면  창문을 전부 꽁꽁  닫고  바람을  본다.  잔디와 풀들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이고  커다란  나무들도 바람 따라 뱅뱅 돌며  휘이익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바람은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커다란 나무의 잎새 깊은 곳까지 흔들고 때로는  가지들을 툭툭 부러트려 떨어트린다.  바람이 지나가면  마당 가득 떨어진 잎들과 솔가지로 어지럽다.  그런데 한바탕 세찬 바람을 맞고 버틴 나무들은 이전보다 생생해 보인다.  낡고  시든 잎과 가지를 바람이  정리해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바람이 무서울 정도의 세기가  아니라면 데크에 나가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느낄 때가 있는데  이상하게  내 안에 숨어있던  응어리들이 쓸려나가는 청량함이나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여름은 바람을 보거나 느끼는 계절이기도 하다

   

  찬바람이 불면  창문을 꽁꽁  닫게  되고 이제 바람은 소리로 더 많이  느끼게 된다. 바람은 나뭇잎들을 다 쓸어가 버리고  벌거벗은 나뭇가지들은 자기들끼리 부딪히고 쓸리며  묘한 소리를 낸다.  깊어진 가을  또는 겨울밤 날카로운 현악기 소리  또는 울음소리가 들려  신경이 곤두선 경험이 있다.   혹시나  길 잃은  동물이  근처에서   울고 있는  것일까  걱정되어  남편을 깨워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하니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서로 부딪쳐 나는 소리라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바람의  연주라고 생각하며 잠들만하다. 차갑지만 대기를 가르며 나뭇가지를 연주시키는 바람을 듣는다. 

  

   바람은 변화다.  일 년 내내 다른 움직임과 세기로  우리 곁을 지나간다.  바람이 지나가면 계절이 지나가고 내 마음도  움직인다.  그런데 이제 많은 사람들이 구획된 정리된 공간에서 외부와 차단된 채 변화하는 자연의 바람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점점 더 많이 전기 에너지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 와서  바람이  차단된 집에서  하루를 보내며  갑자기 바람이 마구 지나가고 불어대는 나의  집이 그리워  카페에 앉아 이렇게 바람 이야기를 쓰고 있다.   벌써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집으로 오늘 저녁이면 돌아간다. 바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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