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살다
지금과는 달리 동네 앞길은 아이들이 노는 소리로 항상 시끌벅적했다. 마땅한 놀이터나 놀이 시설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동네 골목과 흙바닥 그리고 각종 구조물이 모두 놀이 도구였다. 가장 중심 상징물은 전봇대였다. 전봇대가 서있는 집 아줌마는 말 그대로 전봇대 집 아줌마였고, 그곳이 놀러 나온 아이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전봇대는 술래잡기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를 하기에 가장 좋았다. 술래가 전봇대에 기대에 눈을 가리고 있는 동안 나머지 아이들은 흩어져 숨게 되는데, 동네 지형지물과 작은 골목을 활용한 술래잡기는 난이도가 높은 편이었고, 술래는 찾다가 찾다가 지치면 '못 찾겠다 꾀꼬리!'라고 항복하기 일쑤였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역시 전봇대가 주요 포인트로 술래가 눈을 감고 뒤돌아 있는 동안 아이들은 슬금슬금 움직이며 술래에게 다가가다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끝나 휙 돌아서는 순간 움직이면 잡혀서 탈락하곤 했다. 팔방놀이도 함께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였고, 길에다 줄 그어놓고 돌멩이만 있으면 비석치기 놀이도 가능했다. 여기에다 구슬치기, 공기놀이 등 여기저기서 무리 지어 놀이가 벌어지는 곳이 바로 동네 골목이었다. 이렇게 쓰다 보니 새삼 <오징어게임>이라는 드라마가 고맙다.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지금 어린이들도 이런 놀이를 연상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여자아이들 놀이는 무엇보다 고무줄놀이와 공기놀이였다. 정말 고수들이 많았는데, 나같이 운동 신경도 둔하고 놀이도 못하는 아이는 항상 깍두기였다. 치열한 경쟁에서 서로 잘하는 아이를 자기편에 끌어들이려고 하는 판에서 잘 못하는 아이는 처지고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언니들은 나를 내치지 않고 깍두기를 시켜 이 편, 저 편 다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공기놀이나 고무줄놀이를 잘하는 아이들은 혼자서 몇 단, 몇 차례를 계속 성공하며 오랫동안 놀이를 끌고 가는데, 나 같은 아이야 기회를 많이 주어도 금방 죽어 버리니 쉬어가는 겸 해서 끼어 주었던 것 같다. 나와 달리 언니는 모든 놀이에서 만능이었는데, 그래서 인기가 있었고 잘 못하는 동생도 꼭 챙겨 주었다. 그런데 어느 편에도 속하지 못하는 깍두기는 긴장감이 없고 그래서 또 슬며시 놀이에서 빠져나오기도 했던 것 같다.
각각 무리 지어 여기저기 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모두 한데 모여하던 놀이 중에서 ‘우리 집에 왜 왔니?’라는 놀이도 있었다. 인원 제한 없이 각 편 동수만 되면 손을 잡고 앞으로 갔다 뒤로 물러나며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꽃을 찾아왔단다, 왔단다.’ ‘무슨 꽃을 찾으러 왔느냐, 왔느냐’ ‘000 꽃을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이런 노래를 주고받으며 결국 가위 바위 보로 자기편을 늘려 나가는 것이었는데, 그 노랫소리가 동네 골목을 가득 울릴 정도로 우렁찼다.
그렇게 놀다 보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어른들이 나와 ‘누구야 저녁 먹어라’라고 외치기 시작하고 하나 둘,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면 골목은 조용해진다. 넓지 않은 동네 골목에서는 각각의 집에서 요리하는 음식 냄새가 경계 없이 왔다 갔다 하고 그러면 이웃집 저녁 반찬 정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기도 했다. 전깃불 하나도 아껴서 쓰던 그 시절 저녁 먹고 나면 낮에 지치도록 놀았던 아이들은 일찍 잠이 들고, 동네는 전봇대에 매달린 희미한 가로등이 겨우 비치면서 어둡고 조용하게 함께 잠이 든다. 슬며시 떠오른 1960년대 내가 살던 옛집이 있던 서울 동네 풍경이 꼬리를 이어 생각나는 어느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