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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파인 Jun 18. 2023

하우스홀릭 18  옛집 기억, 하나.

집에 살다

   

  몇 달 전 신촌 근처에 회의를 하러 갔다가 시간이 남아서 갑자기 어렸을 때 태어나고 자란 집을 찾아보고 싶어졌다행정 구역이 서교동이었다가 동교동으로 바뀌었던 곳이니 어림잡아 회의 장소에 멀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되었다그래서 오래전 떠난 곳이지만 기억을 되살리며 돌아보기 시작했다지도 어플까지 켜놓고 이 길 저 길 골목을 다녀봤지만 평소 길치인 나는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어렸을 때 놀던 골목 이미지만 머리에 가득한데그곳은 이제 너무 개발되어 빌라와 빌딩이 들어선 곳이 되었고갸우뚱 거리며 다니다가 회의 시간이 다 되어 포기하고 말았다아쉬웠다     

  

  언니오빠 그리고 나까지 태어나고 자란 그 집과 동네는 항상 마음에 남아있다.  기역자로 배치된 개량 한옥 집이었고 마당 구석에는 우물이 있었다이 우물은 살면서 펌프가 되었다가 나중에 수도로 연결되었다이 우물은 여름에 수박을 넣었다가 꺼내먹는 냉장 시설이기도 했다.  아버지께서는 온갖 동물을 사랑하시고 사랑받으셨다. 마당에는 강아지, 한 켠 철망에는 닭과 칠면조와 토끼가 있었고 비둘기와 참새가 왔다 갔다 했다모이를 챙겨주는 때문인지 이 온갖 동물들은 아버지께 특별한 애정을 보였다집 옆 텃밭에는 온갖 채소가 자라고 나팔꽃이 길 따라 길게 심어져 있었다개구쟁이이고 역시 동물을 좋아했던 오빠는 닭이 얼마나 날 수 있는지 궁금해서 닭장에서 꺼내와 텃밭에서 날리기 놀이를 했던 것 같다.  나는 많이 수줍고 조용한 아이여서 뛰어놀기보다는 마당이 내려 보이는 부엌 위 다락에서 동화책을 읽거나 마당을 관찰하는 일을 좋아했었다그래서 뛰어 놀지는 않았지만 다락에서 내려다본 시끌벅적한 마당의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렇게 우리 가족과 동물 들 만으로도 집안이 가득했지만 1960년대 서울살이는 한 집에 더 많은 가구가 사는 게 일반적이었다기역자 집 본채에 우리 가족이 살았다면 아래쪽 방에는 방 한 칸에 어린 아들 데리고 씩씩하게 살고 있는 아줌마네와  늙은 노모를 모시고 사는 청년 가구가 더 살았었고 그 방들의 주인이 몇 차례 바뀌기도 했다부모님은 아주 넉넉하지는 않았어도 집주인이었고 내 생각에 엄마는 음식을 조금씩 못하는 손이 큰 분이었던 것 같다그래서 마당에 모여 가족처럼 이 것 저 것 함께 해 먹으며 나누었던 기억들이 있다특히 더운 여름에는 우물 속에 넣어 둔 수박을 꺼내고 얼음 가게에서 커다란 얼음을 사 와 아주 매우 커다란 양푼에 수박화채를 만들어 모두들 한 그릇씩 그득하게 나누곤 했다.  한쪽에서는 수박 속을 숟가락으로 떠내고 있고다른 한쪽에서는 바늘을 이용해 얼음을 톡톡 잘게 떼내어 커다란 양푼에 한 데 섞어 물과 설탕을 부어 넉넉하게 화채를 만들어 먹으며 온갖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노래도 하는 그런 풍경이 펼쳐졌다.

  

  대문이 있기는 했지만 많은 가구가 들락거리니 지금과는 달리 굳게 닫혀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당시에 거리에는 상이군인이나 망태꾼도 많이 있었고 끼니를 구걸하며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그래서 집으로 쓱 들어와 밥 끼니를 구걸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아버지께서는 이런 분들이 와도 가능하다면 내치지 않는 분이셨다당시에는 구걸하는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찌그러진 그릇에 식은 밥과 반찬을 부어 주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는데아버지께서는 가능하면 식은 밥과 김치 하나뿐이라도 작은 밥상에 챙겨 마루 끝에 앉아 드시고 가도록 했던 것 같다어느 날에는 쌍둥이를 데리고 온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언니와 내가 옆에서 아가들을 돌보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식사하시고 아가들 젖 물리고 고마워하셨던 기억도 있다명확하지는 않지만 쌍둥이 아주머니는 그 후로도 몇 번 더 오셨다 가신 것 같기도 하다그 시절에는 그렇게 조금씩 나누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옛 집의 기억은 집 안에서 보다 동네 마을로 나가면 더 많은 이야기가 펼쳐진다전봇대가 서있었고 구불구불한 골목이 있었고 아이들이 하루 종일 뛰노는 동네 거리 그곳에는 더 많은 추억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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