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살다
봄부터 꽃 축제 소식이 계속 이어진다. 벚꽃, 장미를 이어 6월에는 수국 축제 소식이 들린다. 화려한 꽃망울 앞에서 웃으며, 사진 찍으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뉴스에 나온다. 나이가 들수록 꽃이 좋아지는 건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60이 되기 전에는 책과 글자에만 파묻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 점점 더 눈에 들어온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과 밭을 휘 둘러보다 나도 모르게 꽃가지 몇 개 꺾어 꽃병에 꽂아본다. 화려한 꽃송이보다 그저 흔한 들꽃으로 꽃꽂이하면 그 소박한 멋이 남다르다. 남편은 평생 무겁고 심각한 주제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자였는데, 이 집에 살면서 '꽃 꽂는 남자'로 변신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제법 작품 같은 꽃꽂이를 하곤 한다. 얼마 전에는 흔하디 흔한 조팝나무 몇 가지에다 붓꽃을 함께 꽂아 놓았는데 멋진 조화를 보이는 꽃꽂이가 되었다.
보통 담장 곁에 커다란 눈송이 같은 하얀 꽃을 주렁주렁 달고 무겁게 서있는 나무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까이 보면 수국 비슷하게 생겼는데, 정식 명칭은 불두화라고 한다. 불두화는 화병에 꽂을 때 초록 이파리들을 남김없이 다 떼어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예식장에서 많이 보았던 바로 그 아름다운 꽃장식으로 변신한다.
그런데 꽃이라고 하기에도 그저 잡초라고 치부하기에도 애매한 것이 있는데 바로 개망초이다. 개망초는 사연이 많은데, 농사짓는 입장에서는 정말 달갑지 않은 식물이다. 조금 빈 땅만 있으면 순식간에 점령해 하나 가득 피어나버려 망초가 있으면 농사를 망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나 역시 밭을 순식간에 장악해 버리는 개망초를 미워하고 있다. 뽑아도 뽑아도 순식간에 여기저기 마구 솟아나 자란다. 길지 않은 경험이지만 아마도 쑥보다도 번식력과 생장력이 더 큰 것 같다.
그런데 꽃 하나하나를 보면 또 그리 앙증맞을 수가 없다. 계란꽃이라고도 불리는 것처럼 작은 꽃이지만 노랑과 흰색의 조화가 선명하고 예쁘다. 그래서 어느 날 개망초 잡초를 뽑아 버리다가 마음을 바꾸어 개망초를 꽃 대접 해주기로 했다. 가위로 적당히 잘라 풍성하게 다발을 만들어 보았다. 땅에서는 질기디 질긴 잡초인데 꺾어 놓으면 빨리 시들고 여린 꽃잎도 휘리릭 날아가 버린다. 너무 시들기 전에 얼른 꽃병에 꽂아주어야 한다. 그러다 도자기를 하는 동료 지인이 선물해 준 파란 화병이 생각나 개망초를 풍성하게 꽂아 보았다. 새로운 아름다움이었다. 망초도 꽃병에 꽂으면 이리도 예쁘구나!
꽃들도 귀하게 대접하면 이렇게 각자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데, 우리 모두가 옆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귀하게 대접하면 어떤 아름다움을 보여줄 것이며,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될까? 세상에 너무나 화려하고 예쁜 꽃들이 많지만, 새삼 대수롭지 않은 들꽃들이 보여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어 몇 마디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