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시간의 기록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오전 7시쯤이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깼다.
잠을 제대로 잔 것 같지도 않았고
몸은 무거웠지만
다시 누울 수는 없었다.
이제는 하루를 미룰 여유가 없었다.
창밖을 잠깐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씻고, 옷을 챙겨 입고,
가방에 악보 몇 권을 넣으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오늘 일정 생각뿐이었다.
학원으로 향하는 길이 아직은
어색했다.
'이 길을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불안한 생각들이 들기 시작할 때쯤 학원에 도착했다.
그날은 9시부터 지환이와 레슨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전에 하루 연습 계획부터 다시 점검했다.
오전 9시 롱톤,
10시 스케일과 스타카토,
점심은 간단히 해결하고
오후에는 곡 연습과 테크닉,
저녁에는 다시 기본기.
대략 12시간.
종이에 적힌 스케줄을 바라보며
잠시 멍해졌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해 보였지만
현실적으로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다 소화해 낼 수 있을까.’
불안이 스쳤지만
입시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 남짓.
선택지는 없었다.
지환이가 도착했고
바로 연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소리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악기를 쉬었던 시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호흡도 불안했고
음정도 흔들렸다.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초조함이 커져 갔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몇 번이고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이미 시작한 이상
중간에 멈출 수는 없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조금씩 소리의 형태가 잡혀가기 시작했다.
아주 미세한 변화였지만
그 작은 변화에
서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연습에 한창 집중하고 있는데
지환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형, 홍보하는 거… 제가 도와줄게요.”
순간,
머릿속이 멈춘 느낌이었다.
맞다.
나는 연습과 레슨에만 매달린 나머지
정작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학원은 있었지만
학생은 없었고,
알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날 바로
미리 만들어 두었던 전단지를 꺼냈다.
천 장이 조금 넘는 양이었다.
손에 들고 보니
숫자보다 훨씬 많아 보였다.
학원 뒤쪽 아파트 단지,
근처 초등학교 주변을
무작정 돌기 시작했다.
요즘처럼
블로그나 카페, SNS가 활성화되기 전이라
선택지는 단순했다.
직접 돌아다니며
사람 손에 쥐여주는 것뿐이었다.
둘이서 하기엔 역부족이라 친한 동생인
희종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도착한 희종이까지 합류해
셋이서 고속터미널 앞에 섰다.
사람이 너무 많았고
그만큼 시선도 많았다.
전단지를 내미는 손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받자마자 구겨 버리는 사람,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
전화부스 안에 붙여 놓은 전단지가
이미 찢겨 있는 걸 볼 때마다
괜히 내가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천 장을 다 돌렸을 즈음엔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쳐 있었다.
“오늘은 연습하지 말고
우리 집 쪽에서 고기나 먹자.”
저녁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고기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지만
맛이 잘 느껴지지는 않았다.
동생들이 괜찮다며
계속 말을 건네줬지만
머릿속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만
계속 맴돌았다.
이 길이 맞는 건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아무 계산도 서지 않았다.
그날 마신 술은
끝까지 쓰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