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다
그날 이후 학원에 아주 조금, 정말 조금씩 공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문의 전화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레슨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생겼다.
2007년 말쯤, 학원을 시작한 지 2년 정도 되었을 때 드디어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월세를 내고 나면 손에 남는 돈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만큼은 뿌듯했다.
2007년을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 해’로 마무리했다면,
2008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 해로 기억된다.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학생이 들어오는 것도 중요했지만, 오래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기에 매 수업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던 중 항상 밤늦게 레슨을 받던 성인 수강생 한 분이, 일 때문에 더 이상 배우기 어렵다고 연락을 주셨다.
겨우 숨을 돌리나 했는데, 다시 숨이 막혀왔다.
그런데 잠시 후, 뜻밖의 말이 이어졌다.
“선생님, 근데 저희 아이가 하나 있는데요.
홍현우라고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클라리넷을 시켜보려고요.
방문 레슨도 괜찮으세요?”
“네, 그럼요.”
너무 감사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
처음 집으로 레슨을 갔을 때, 그 아이는 악기를 하기에 참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악기에 큰 흥미를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아 전공까지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훗날 예고에 진학해 음대까지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그해, 나중에 전공을 하게 되는 학생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그중 한 명이 지금은 클라리넷 교습소를 운영하고 있는 오인택 원장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인연이라는 건 신기할 따름이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당시 전공생을 키울 생각도 없었고,
그럴 자신도 없었는데 무작정 찾아온 학생들이었다는 점이다.
2008년 8월, 몇 명의 아이들과 함께 콩쿠르 대회에 참가했고 결과는 좋았다.
기쁜 마음으로 9월을 맞이했지만, 콩쿠르에 나갔던 학생들 몇 명이 “잠깐 쉬겠다”라고 하면서 다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학원 문을 두드렸다.
“저… 혹시 상담 가능할까요?”
어머니와 학생이 악기를 들고 들어왔다.
“아이가 외국에서 잠깐 하다가 왔는데요. 전공이 가능할까요?”
“네? 몇 학년이죠?”
“중3이에요. 예고는 못 가겠죠…?”
보통 예고 입시는 11월쯤이었다.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힘들긴 하지만… 한 번 도전해 볼게요.”
소리는 곧잘 냈지만 기본기는 많이 부족했다.
“규정아, 얼마 안 남았어.
연습을 정말 열심히 해야 돼.
최선을 다해 준비해 보자.”
그렇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예고 입시에 도전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합격이었다.
뛸 듯이 기뻤고, 무엇보다 감사했다.
더 놀라운 건, 내가 졸업한 학교에 합격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인연으로 학교 강사까지 나가게 되었다.
그해 어느 날, 문득 수업 시간을 계산해 봤다.
‘한 시간… 두 시간…’
스무 시간.
무려 스무 명의 레슨생을 맡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