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닐 거라 믿고, 다시 문을 열던 시간
2009년은 나에게 참 뜻깊은 해였다.
그해 2월, 드디어 학원 연주회를 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학생 수도 많지 않았고,
연주회를 연다는 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상하게도
“이제는 한번 시도해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용기는 한 학생 덕분에 생겼다.
2007년부터 다니던 세중이라는 아이였다.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세중이는
레슨을 올 때마다 질문 폭격을 했다.
“선생님, 학생 수는 늘었어요?”
“망하면 안 되는데, 저 걱정돼서 잠도 못 자요.”
“피아노 학원은 연주회도 하는데 왜 여긴 안 해요?”
그 질문들 앞에서
나는 늘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응, 네가 다닐 동안은 안 망할 거야.”
“연주회는… 학생이 없어서 아직은 힘들 것 같아.”
그렇게 버티고 있었는데,
연주회를 하겠다고 말해주자
그 아이는 정말 뛸 듯이 기뻐했다.
세중이는 이후 중학교 3학년까지 꾸준히 배우다가
학업 때문에 잠시 쉬었고,
대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군악대 준비로
다시 찾아온 학생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이 덕분에 연주회를 열 용기를 낸 것 같다.
하지만 연주회 준비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험난했다.
날짜를 정하는 것부터
연주홀 대관, 곡 선정, 프로그램 구성, 반주 문제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끝이 없었다.
어린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께 먼저 말씀을 드렸고,
성인 레슨생 분들께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은 대부분 좋아하셨지만,
성인분들의 반응은 쉽지 않았다.
“제가요? 어떻게 해요, 저 못해요…”
“그래도 동기부여도 되고 좋으실 것 같아요.”
“음… 한번 생각해 볼게요.”
그렇게 하나하나 설득해
결국 19명 정도의 연주 인원을 모을 수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연주홀을 찾는 일이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작은 연주홀 정보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며칠을 고민하던 중,
지인이 학동역 근처의 신한아트홀을 알려주었다.
답사를 가보자마자
‘바로 여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계약을 하고
날짜는 2월 28일 토요일로 정했다.
이후 레슨 시간마다
각자 연주할 곡을 정해 두 곡씩 준비에 들어갔다.
피아노 반주는 부담이 커서
가능한 한 내가 클라리넷으로 반주를 해주고,
MR 반주를 구해 연습을 시켰다.
그때 처음으로
MR 반주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그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 수집하고 있다.
연주회 준비로 한창 바쁠 즈음,
치명적인 걸 하나 깜빡했다.
팸플릿 제작.
연주회까지 남은 시간은 단 일주일.
부랴부랴 인쇄소를 알아봤지만
이 짧은 기간에 해줄 곳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심정으로 어머니께 사정을 말씀드리자
마침 단골 인쇄소가 있다며
한번 부탁해 보겠다고 하셨다.
당시 어머니는 서예 작품 활동을 하고 계셔
몇 군데 인쇄소와 인연이 있었다.
다행히 인쇄소 사장님이
“빨리 해보겠다”라고 해주셨고,
나는 명단과 장소, 정보를 모두 넘겼다.
그리고 3일 뒤.
팸플릿이 나왔다며 찾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기대 반, 안도 반으로 인쇄소에 갔는데
팸플릿을 보는 순간
나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왜 내 인생은 이렇게 한 번에 풀리지 않는 걸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