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을 거라 믿었던 그 이후
연주회를 무사히 마친 이후,
학원은 아주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문의 전화가 늘었고
학부모님의 소개로 레슨도 하나둘 이어졌다.
물론 그만두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면서
‘이제 좀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착각도 들기 시작했다.
그 무렵,
그동안 연락을 못 하고 지냈던 친구들에게
다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모임에도 나가고,
학원 이야기와 그동안의 일들을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하면
축하를 받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연주를 못하니까 학원 한 거 아니야?”
“망하면 어쩌려고?”
“밥은 먹고 다니냐?”
그 말들이 생각보다 깊게 꽂혔다.
물론 가까운 후배들은 진심으로 응원해 줬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제야 깨달았다.
연주자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선택이
누군가에겐
‘가장 실패한 길’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사람이 두려워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었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혼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 가지를 결심했다.
‘그래, 학원을 20년만 버텨보자.
그때쯤이면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지겠지.’
‘무조건 버티자.’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욕심은 끝이 없었고,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이 신경 쓰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레슨을 하던 어느 날,
선배의 독주회 소식이 들려왔다.
“석환아, 나 독주회 하는데 올 수 있어?
학생들 중 관심 있는 친구들 있으면 표 줄게.”
장소는 예술의 전당이었다.
솔직히 부러웠다.
그때까지도 나는
연주자의 꿈을 완전히 놓지 못하고 있었다.
학생들 몇 명과 함께
예술의 전당 앞에서 만나기로 했고,
약속을 했으니
마음이 무거웠지만 공연장으로 향했다.
표를 찾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석환아.”
뒤를 돌아보니
학교 교수님이었다.
“언제 귀국했어?”
“몇 년 됐어요.”
“연주는?”
“학원 하고 있어요.”
“학원…?”
그 짧은 대화 속에서
상대의 시선이 느껴졌다.
비슷한 질문과 대답을 몇 분의 교수님께 더 반복한 뒤,
학생들에게 표를 나눠주고
나는 예술의 전당 밖으로 나왔다.
왜인지 공연장 안으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야 조금 살 만해졌는데
왜 아직도 죄지은 사람처럼 피해 다녀야 하지?’
음악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하나 뽑았다.
밀크커피 한 잔.
한 모금 마셨는데
유난히 썼다.
아마 내 마음과 같았을 것이다.
연주자로 성공하지 못하고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
연주가 너무 하고 싶을까 봐
공연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
그게 바로
그때의 나였다.
그래도 그날,
하나만은 분명히 다짐했다.
연주가 아니라면,
적어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만큼은
끝까지 책임지자고.
그렇게 나는
예술의 전당 밖을 천천히 걸어 나왔다.
곧 세상이 멈춰버릴 줄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