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2009년 5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원에 나와 홍보를 하고, 레슨에 열중하고 있었다.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지만, 그래도 책임감 하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잠깐 쉬는 시간, 홍보를 하려고 인터넷을 켰다.
그때 하나의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신종플루….’
하지만 그때만 해도 ‘별일 아니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며칠 뒤, 뉴스는 온통 신종플루 이야기로 가득했다.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학원에는 큰 영향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선생님, 요즘 신종플루가 유행이라서요. 잠깐 쉬었다가 다시 해도 될까요?”
“레슨 몇 번 남았죠? 남은 레슨비 환불 부탁드려요.”
힘이 쭉 빠지는 문자들이 수십 통 이어졌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학생들이 한 명, 두 명 떠나더니
어느새 성인 몇 분만 남은 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 무렵, 공황장애 증세와 함께 심각한 우울감이 찾아왔다.
‘남아 계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지’라고 다짐했지만
몸도 마음도 말을 듣지 않았다.
시간표를 보니 일주일에 여섯 명 정도 레슨하는 일정.
다시 월세 걱정이 시작됐다.
처음 학원을 열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 유행이 하루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고, 신종플루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그리고 결국, 나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어느 날 레슨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오한과 고열, 구토 증세가 몰려왔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저… 죄송한데 구급차 좀 불러주시겠어요?”
레슨 도중 쓰러졌다.
어떻게 병원까지 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레슨을 받던 성인분이 함께 가주셨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정신을 차려보니 응급실이었다.
신종플루에 스트레스성 위염까지 겹쳐, 몸은 완전히 만신창이였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앞으로의 학원 운영이 걱정됐고,
내 인생이 너무 초라하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낭떠러지 앞에 겨우 서 있는 사람.
누군가 살짝 밀기만 해도 그대로 떨어질 것 같은 상태.
그게 바로 그때의 나였다.
이틀 뒤 퇴원해 학원으로 돌아왔을 때,
거의 남아 있는 학생은 없었다.
그런데 몇 분의 성인분들에게서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선생님, 몸은 좀 어떠세요?”
“저희는 끝까지 선생님과 함께 갈 겁니다. 힘내세요.”
그 문자를 보는데,
또 한 번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