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클라리넷이야기 26편-심사장 복도에서 들은 한마디

아무도 대신 서줄 수 없는 자리

by 문석환


그해를 기점으로


이상하게 모든 게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곁에 남아 있었지만


나는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겉으로 보기엔 잘 가고 있는 듯했지만,


속은 이미 많이 무너져 있었다.


2010년도 학원 정기연주회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몇몇 학생들이


연주회를 꼭 하고 싶다고 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준비를 하게 됐다.


2010년 8월쯤으로 일정을 잡고


1회 연주회를 했던 신한아트홀을


다시 대관했다.



하지만 연주회를 준비하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시간문제였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간절하지 않았다.


준비 기간도 길지 않았고


의무감으로 하는 연주회는


버겁게 느껴졌다.


‘그냥 취소할까?’라는 생각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이미 대관은 잡혀 있었고


날짜도 얼마 남지 않았다.


결국 열 명 남짓한 인원으로


연주회를 준비했다.



그런데 연주회 당일,


그중 한두 명이 컨디션 문제로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리허설 도중 속이 안 좋아


제대로 준비하지도 못했다.


줄어든 인원도 신경 쓰였지만


무엇보다 학부모님들의 반응이


가장 부담스러웠다.



전공생 대부분은 무대에 올랐지만


평소만큼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몇몇 성인분들은


연주를 끝내지 못한 채


무대에서 내려왔다.


나는 스스로를


계속 자책했다.



연주회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한 시간 남짓한 연주회는


하루처럼 길게 느껴졌다.


끝났을 때


분위기는 결코 좋지 않았다.


‘아, 드디어 끝났구나.’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혹시 그만두는 사람은 없을까’


불안이 밀려왔다.



다행히


그만두는 학생은 없었다.


하지만 몇몇 성인분들은


그날 이후


눈에 띄게 자신감을 잃어갔다.


레슨을 할 때마다


나는 죄책감을 안고


레슨에 임했다.



그해,


전공생은 점점 늘어갔고


그만큼 나는


초심을 잃어갔다.



취미 레슨은


조금씩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덕원예고 실기시험


심사 제의가 들어왔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고


나는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그게 잘못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실기시험 당일,


내가 가르친 학생은


세 명이었다.



현우 역시


덕원예고 입시를 준비 중이었고


다음 해까지 생각하면


네 명을 지도하고 있었다.


현우는 얼마 전


덕원예고 콩쿠르에서


전체 1등을 한 상태였다.


합격은


당연하다고 믿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한 마음으로


모교인 덕원예고에


들어섰다.


스승의 날마다 찾아가던 학교였지만


심사위원 자격으로 들어오니


느낌이 달랐다.


음악부장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실기시험장으로 향했다.


발걸음은 가벼웠고


콧노래까지 나왔다.



시험장은


예전과 달라 낯설었다.


내 이름이 적힌 팻말은


왼쪽 끝자리에


놓여 있었다.


열 명 남짓한


심사위원들의 팻말도


보였다.



자리에 앉아 있으니


몇몇 심사위원이


들어왔다.


처음 보는 분들이었지만


일어나 인사를 드렸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어… 왜 그러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두 시간쯤 지나


관악기 학생들의


실기시험이 모두 끝났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은


다행히 큰 실수 없이


마쳤다.


짐을 들고


나가려는 순간


뒤에서 심사위원들의


대화가 들렸다.


“저 클라리넷 선생님 어디 소속이래요?”


“처음 보는데요.”


“학원 한다고 들었어요. 1회 졸업생이래요.”


“학원이요?


학원 하는 사람이


어떻게 심사를 나와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심사장 밖으로 나와


복도를 걸어가는데


유난히 쓸쓸했다.


날씨는 춥지 않았지만


마음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전하고 괴로웠다.



학생들 앞에서는


선생이었지만


심사장에서는 여전히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학원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무리 잘해도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음악계에서


철저히 소외된 사람이었고,


그날 이후


‘혼자’라는 감정이


내 안에 깊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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