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남았다
악기사를 들어서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가 생각했던 그 배우가 맞았다.
‘앞으로 어떻게 가르쳐야 하지…’
걱정이 먼저 앞섰다.
“안녕하세요. H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수줍게 악수를 나누고 악기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횡설수설했을 것이다.
겨우 설명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레슨 시간을 잡으려는데, 그가 말했다.
“혹시 지금 시간 되시면 바로 학원 가서 레슨 받을 수 있을까요?”
“네…?”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그냥 바쁘다고 할까?
아니면 그냥 하자고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이미 나는 그의 차에 타고 있었다.
악기사에서 학원까지는 차로 10분 남짓한 거리였지만,
체감상 몇 시간은 걸린 것 같았다.
학원에 도착해 악기 조립부터 차근차근 설명했다.
손에 식은땀이 나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안 잡아먹으니 천천히 하세요.”
웃으며 던진 그 한마디에, 오히려 더 긴장이 됐다.
사실 나는 엄청난 팬이었다.
독일에서 힘들던 시절,
H 배우의 영화를 보며
‘언젠가 꼭 한 번은 만나보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었다.
그 인연이 10년 넘게 이어질 줄은,
그때는 전혀 몰랐다.
당시에는 시간이 비교적 여유로웠다.
레슨이 끝나면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술 한잔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왜 그가 성공했는지, 레슨을 하며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취미로 배우는 상황이었지만,
하루에 7시간 넘게 연습을 해오고 있었다.
그만큼 실력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이후 영화에 클라리넷 연주자로 출연했고,
대학교 후배들과 아마추어 연주자들과 함께
사마르 클라리넷 앙상블을 만들어 활동하게 된다.
그 만남은
내 인생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그리고 2010년,
또 한 사람의 학생을 만나게 된다.
변호사로 활동하시는 분이었는데,
직접 전화를 주신 것은 아니고
후배라는 분이 대신 상담 전화를 해주셨다.
“연세가 좀 있으신데 클라리넷을 배우고 싶어 하세요.
한 번 시작하시면 오래 하실 분이에요.”
“네, 언제가 괜찮으세요?”
바로 다음 날로 약속을 잡고 첫 레슨을 했다.
처음에는 소리를 내는 것조차 힘들어하셨지만,
몇 번의 레슨이 지나자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분은 매일 두세 시간씩 학원에 나와 연습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참 좋은 인연들을 만난 해였다.
이제는 정말 좋은 일만 남았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인생은,
늘 내가 원하는 만큼의 행복을
허락해주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