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기대 없이 꺼낸 약속 하나
그 해 2월에 열린 세 번째 정기연주회는
크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다시 숨을 고를 수 있게 해 준 시간이었다.
그렇게 2011년을 지나며
나는 처음으로 ‘성인 연주회’를 제대로 준비하게 되었다.
정기연주회 이후 학원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불안과 초조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 애썼다.
하지만 성인반 연주회는 처음이었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오래 배우고 계셨던 분들을 중심으로
한 분, 한 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여덟 명의 성인분들이 모이게 되었고
그해 7월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고민한 건 연주 공간이었다.
늘 하던 방식이 아닌,
조금은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다.
여러 곳을 찾아보던 끝에
성신여대 근처에 있는 한 라이브 카페를 알게 되었다.
대관도 가능했고, 맥주가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곳이었다.
‘성인 연주회’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공간이라 생각했고
곧바로 대관 계약을 했다.
성인분들께 장소를 말씀드리자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그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는 동시에
걱정도 함께 밀려왔다.
‘괜히 일을 벌인 건 아닐까…’
누구에게 조언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저 스스로를 믿고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연주회 당일,
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선임 주영이에게
영상과 사진 촬영을 부탁한 뒤
연주 장소로 향했다.
평일 금요일 저녁이라 지하철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성신여대에 도착하기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대관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몇몇 성인분들이 먼저 와 계셨다.
모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제안을 했다.
“맥주 한 잔 드시고 연주하시는 건 어떠세요?”
“맥주요? 좋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나의 패착이었지만,
그날의 분위기만큼은 정말 최고였다.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대관을 했는데
맥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오래전부터 레슨을 받으시던 한 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먼저 연주하겠습니다.
곡은 ‘쇼스타코비치 왈츠’입니다.”
이미 맥주를 꽤 드신 상태였지만
비틀거리며 무대로 향하셨다.
반주가 흐르고 첫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공간의 울림 덕분인지
소리는 유난히 좋게 들렸다.
기분이 좋으셨는지
연주 중간중간 미소를 지으셨지만
삑사리도 나고,
중간에 끊기기도 했다.
그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주를 망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그걸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분위기는 끝까지 좋았고
그렇게 성인반 연주회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연주가 끝난 뒤에는
새벽 3시가 넘도록 뒤풀이가 이어졌다.
몸은 많이 지쳤지만
마음만은 참 행복했다.
앞으로가 조금은 기대되기 시작했다.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힘을 내보자.’
그렇게 다짐하며 2012년을 맞이했지만,
그 해가
환희와 좌절이 한꺼번에 몰려온 해가 될 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