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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혀노블 Aug 14. 2024

퇴사 전 경제적 자유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나는 지금 시시포스의 형벌을 받고 있다.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매일이 공휴일 혹은 주말럼 느껴지는 일임을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알았다.


달이 차고, 해가 기울며 하루하루 날짜가 지나가는 것이 어느 순간 무뎌졌다.


설거지를 하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었지?" 가만히 생각했다.


허리가 아프고, 몸 천근만근이었기에 직장인들에겐 바이오리듬상 피로가 최고조에 달하는 목요일인가 했다.


오늘은 직장인들이 흐트러진 상태로 보낸 주말을 동경하며 권태감과 우울함에 한창 빠져있을 월요일이었다.


회사에 있었다면 약도 없다는 월요병에 걸려 골골거리고 있었을 텐데, 전혀 그런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방안의 책을 몽땅 빼고, 가구를 들어 날랐고, 책과 잡동사니를 다시 정리했다.


눈에 보이면 해야 하고, 한번 손을 댄 것은 그 자리에서 끝을 보아야 한다.


정신없이 육체를 쓰다 보면 잠시나마 현실의 문제를 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겐 직무를 계속 이어서 커리어를 쌓기 위한 이직준비를 할지,


경력과 전혀 상관없지만 정신적으로 조금이나마 해방된 파트타임으로 일할지,


그것도 아니면 재테크 공부를 다시 시작해 돈을 조금씩 불려볼지 이런저런 선택지가 놓여있다.


다시 새로운 환경에서 사람들과 어울릴 생각을 하면 막막하지만 회사를 너무 가리지만 않으면 이직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안정적으로 적응해 5년 이상 다닐 수 있는 회사를 찾기까지 또 몇 번의 회사 바뀜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한다면 텔레마케터, 또는 시급 알바일 텐데... 요즘은 키오스크에 밀려 알바자리도 없다고 들었다.


문득 직장인이 아닌 건물주를 꿈꿨던 과거의 어느 시절이 떠올랐다.


아이가 태어난 다음 해, 곰팡이 핀 10평 남짓한 빌라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었다.


부동산 강의를 듣고, 사람들과 만나 밤늦게까지 부동산 얘기를 하고, 주말에는 그 사람들과 아파트를 보러 다녔다.


그때는 소액으로수도권 아파트를 살 수 있었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대출도 잘 나와서 부동산 하기 참 좋은 시절이었다.


그때, 부동산 투자로 집 2채와 재개발 입주권을 샀고 나름 똘똘하다는 아파트 한 채를 샀지만 제적 자유는 이루지 못했다.


일이 년쯤 지나자 신경 쓸 것이 많아 회사일과 병행하기 힘들어졌고, 절실함도 사그라들었다.


'경제적 자유'를 외치다 회사에서 주는 월급의 유혹에 빠져 결국 이모양이 되어버렸다.


직장인은 자신의 시간을 팔아 돈과 맞바꾸는 직업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나는 그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회사에 내 시간을 파는 선택을 했던 것이다.


10년 안에 10억 벌기를 목표로 하는 '텐인텐'이라는 이름의 카페가 유행한 적이 있다.


10억을 모으고, 자신이 어떻게 그 금액을 달성할 수 있었는지 인증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직장생활과 부업으로 10년 안에 10억을 벌면 퇴사 후 여유 있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염원이 있었던 때다.


그때의 10억과 지금의 10억 가치는 천지차이지만, 나에겐 그 10억 없으니 이런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돈 걱정을 크게 하지는 않았었다.


다달이 월급이 나오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은 돈을 쓸 수 있었고,


고가의 명품백, 몇십만 원 하는 하이엔드 브랜드의 옷을 마음 놓고 살 수는 없었지만 가끔 바쁠 때 고민 없이 택시를 탔다.


저녁을 하기 귀찮은 날은 외식을 했고, 밥값보다 비싼 커피도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이 사라졌고 잠시나마 통장을 스쳐가던 월급도 사라졌으니 마음 놓고 소비할 수 없게 되었다.


가끔 핫딜 가격이 뜨면 서슴없이 결제하던 호캉스가 유일한 사치였는데 이 또한 쉽게 즐길 수 없게 되었다.


퇴사한 뒤에야 강남 새 아파트 국민평형을 보증금 2억에 월세로 받으면 내 월급 정도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월세 받을 아파트도, 건물도, 구분 상가도 없으니 일하지 않고는 어디에서도 내 월급만큼의 돈을 충당할 수 없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십만 분의 일의 확률을 기대하며 로또나 연금복권을 구입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겠지?


무엇을 할지, 앞으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시시포스가 떠 올랐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시포스는 신들을 기만한 죄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벌을 받는 인물이다.


이 바위 정상 근처에 다다르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영원히 되풀이되는 형벌을 받고 있는 시시포스처럼 경제적 자유를 이루지 못한 나는 끝나지 않는 형벌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회사가 주는 월급을 믿고 시간을 기만한 죄로 또다시 벌을 받고 있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출처 Designed by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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