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속얘기를 터놓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데면데면해진 경영팀 팀장 B와 커피를 마셨다.
퇴사 전 P이사와의 면담을 통해 B팀장이 내 험담(출퇴근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며)을 제일 많이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억울한 부분도 있고, 화도 났지만 구태여 따지지 않았다.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들을 수 있고, 퇴사하고 나서도 요청해야 할 서류들이 있을 텐데 괜히 얼굴을 붉혀 뭣하랴... 이성적으로 행동하자"
퇴사할 때가 되어서야 차 한잔을 같이 하며 퇴사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의 짐은 얼마나 버거운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다.
"회사를 떠난 사람들은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나는 것으로 그 할 일을 다 했으니 남아있는 사람들도 그만큼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신임 대표는 주간보고 시간마다 이렇게 말을 한다고 했다.
'그 마음가짐이 얼마나 가는지 두고 보자.' 콧방귀를 뀌었지만 실천을 공표라도 하듯 기존 직원들에게 제공되던 복지혜택을 거의 없앤다고 했다.
연봉을 삭감하지는 않았지만 매달 아이 1명당 지원되던 육아수당, 3개월마다 제공되던 도서비, 1년에 한 번 제공되던 가정의 달 문화비, 휴가비 등이 사라졌다.
이제 회사는 영업 이익을 내는 것이 아닌 남아있는 빚을 더 이상 늘리지 않는 것으로 목표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5월이면 회사의 현금이 바닥나기 때문에 어제 임원 적금을 해지하고 왔는데, 이율이 너무 낮아 이자도 얼마 안 된다고 했다.
나를 내보낸 회사가 힘들고, 남아 있는 직원들의 사정도 크게 나을 바 없다는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보란 듯이 더 좋은 곳에 이직해서 소식을 전해주려 했는데 회사가 망해버리면 그들이 내 소식을 전혀 들을 수 없게 될 테니 말이다.
내 2-30대를 오롯이 바친 회사의 민낯은 가엽고 씁쓸했다.
한 때는 본사의 전체 매출 30퍼센트를 담당했었고, 플러스 영업 이익으로 성과급 잔치를 심심치 않게 했던 우리 회사가 사라질 수도 있다.
내 퇴직금은 평균 임금으로 계산이 되었고, 회사의 퇴직금 적립 금액이 60%밖에 되지 않아 퇴직금이 적립되던 은행에서 일부, 회사에서 일부 내 IRP계좌로 입금해 준다고 했다.
퇴직연금은 과세이연 상품이라 IRP를 해지할 때 퇴직 소득세가 나오기 때문에 세금 떼기 전 금액으로 입금된다.
퇴직 위로금과 남은 연차수당은 소득세를 미리 떼고 난 금액으로 내 월급 통장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퇴직금의 액수와 입금 방식을 듣고, 4대 보험 상실신고와 퇴직확인서 얘기까지 듣고 나니 이제 진짜 퇴사를 한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났고, 그들은 모두의 기억에서 점점 희미해져 갔다.
나는 계속 여기에 남아 라떼 시절의 캐캐묵은 에피소드를 하나씩 풀어내며 그렇게 잊혀가는 퇴사자들의 얘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있을 줄 알았다.
나는 퇴사자가 아닌 근속자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이제와 깨달은 가장 큰 착각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회사 문을 나설 때, 누구는 나를 배웅했고, 따라 나오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평소에 데면데면했던 사람인데도 나를 배웅하고, 친분이 있다고 생각했던 대리는 내가 나가는 걸 못 본 체하고 일만 했다.
마지막 퇴근길엔 뭐라고 인사하며 뒤돌아 나와야 하는 걸까?
나는 멋쩍게 가끔 회사 소식이 궁금하면 연락하겠노라 했고, 사람들은 나에게 가끔 말고 '자주 연락하고, 자주 놀러 오라고' 했다.
"언제 밥 한번 먹어요"의 또 다른 버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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