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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모일수록 짙어만지고

by 둥둥

어릴 때 우리 집은 고모네 가족과 거의 같이 살다시피 했다. 사촌들까지 합하면 한 살 터울로 쪼르르 있는 세 동생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말이 안 통하는 파이터들을 중재하기 힘들었던 네 살배기 k-장녀 둥둥은 세 동생을 각각 부둥켜 안아 한 방에 하나씩 떼어 놓아야만 전쟁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나도 언니 하나 낳아주지. 내가 제일 언니라서 너무 힘들다고 젊은 숙경에게 울며 토로했던 맏이는 지금은 사촌동생들을 거의 안 보다시피 한다. 한 살 어린 남동생은 언제 그런 적이 있었냐는 듯 의젓하게 제 몫을 다하며 살고 있다.

그런 동생에게 나는 연말을 맞아 짧고 강력하게 이혼 결심을 알렸다. 30년 전 싸움을 말리던 누나답게 카리스마 있고 끄떡없는 든든한 모습으로. 그렇지 않으면 동생이 화를 참지 못할까 봐 변호사가 일러준 법적인 이치를 설명해 가며 냉정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전달했다. 사춘기 시절의 동생은 가끔 욱하는 기질을 참지 못했기에, 네가 그럴까 봐 혹시나 말하는 거야 했더니 자기도 이제 다 커서 안 그런단다. 누나는 어려도 누나이고 동생은 자라도 동생인걸 걔는 아직 모르는 것 같다.


1월 1일이 되었다. 휴일에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텅 빈 집을 지키고 있을 나의 모습을 안쓰럽게 여긴 친구들은 서로 자신들의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모두 이런 날 배우자와 함께 보내는 소소한 행복을 아는 유부 친구들이었다.

윤 언니도 그중 하나였다. 윤 언니는 그가 가장 아끼는 고등학교 친구 B의 와이프다. 기꺼이 내가 홀로서기할 집을 찾는데에 함께 나서주었던 윤. 호텔 라운지에서 애프터눈티 세트를 사주며 어른의 위로는 돈으로 하는 거라고 말하던 윤. 친정 엄마에게 부탁해 신년 사주를 대신 봐주고 너는 무조건 잘될 거니 걱정하지 말라던 윤. 자신의 변호사 친구에게 전화도 걸어주고, 꽃집을 접으면 도전해 볼만 한 유망한 직업도 고민해 주고, 도움이 될법한 강의도 찾아 들려준 윤.

언니가 보여준 위로는 돈만 있다고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어른의 위로가 아니었다. 윤의 위로는 친구들의 것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다각도로 이뤄졌다. 힘든 순간에 친언니처럼 의지가 되는 사람이 곧 이혼할 남편 친구의 와이프라는 게 웃겼다. 웃긴 사실치고 윤 언니는 언니로서 너무 훌륭해서, 평생 언니라고는 없어본 나는 몇 년 먼저 겪은 또래의 사려 깊은 헤아림에 매번 감탄하고 감동하곤 했다. 그런 윤 언니가 남편으로 고른 B도 얼마나 속이 꽉 찬 사람인지 잘 알기에 언니의 안목과 통찰로 말하는 모든 것은 그저 믿고 따르고만 싶었다.


B 뿐만 아니라, 그와 친한 고등학교 친구들 대부분은 그와 대학 시절도 함께 보낸 끈끈한 사이였다. 그중 일부는 직장까지 연이 이어져 돈독하지 않을 수 없는 죽마고우들. 기숙사에서 복작복작 대던 학창 시절처럼 직장이 같으니 사는 동네도 계속 고만고만하여, 휴일이 있을 때면 가족처럼 편하게 자주 보곤 했다. 그와 나의 인연이 13년이라는 것은 그의 친구들인 나의 선배들과 함께한 인연도 13년이나 되었다는 뜻. 그만큼 우리가 다같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보내고 맞은 해도 여럿 되었다.

쌓인 시간만큼 모두가 그 모임을 아꼈고, 소중하게 생각했다. 각자였다, 여자친구와 함께였다, 배우자와 아이들까지로 확장된 세계에서 꿋꿋하게 중심을 지킨 아카이브 인간. 오빠들은 그 모임의 자리를 오랫동안 변치 않고 지켜온 나를 자기들처럼 아껴주었다. 그런 만큼 그와 나의 이혼은 그들에게도 큰 충격이었고, 나와의 의리를 생각하면 더욱더 ‘그러면 안 될‘ 일이었던 것 같다.

우리 사이에 벌어진 일을 알게 된 오빠들은 무조건 그가 잘못했다고 강경하게 대응하는 파와 잘못했지만 그런 네가 내 친구인걸 어쩌겠느냐고 인정에 못 이기는 파로 나뉜 듯했다. 인정에 못 이긴 오빠들도 나에게만은 보이게, 심지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까지도 마음을 써 주었다고 들었다. 나는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으나 보이지 않게 전한 마음에는 고마운 마음만 간직할 밖에 방법이 없다. 보답하지 못한 마음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하다.


B는 그중 강경파인 입장이었다. 나와 윤 언니 사이가 이토록 돈독해서였을지. 친구들 중 누구보다도 B는 자신의 친구인 그를 걱정하는 만큼 나에 대한 걱정도 큰 것이 느껴졌다. 새 해가 밝는 날, B 오빠와 윤 언니가 서울에 있는 자신들의 집으로 나와 친구들을 초대했다. 나의 친구들 역시 B 오빠와 같은 고등학교 동문이었으므로, 언니에게는 남편의 또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우리는 <둥둥의 미래 대책 방안 논의>를 명목으로 모여 여느 때처럼 시답잖은 이야기로 웃고 떠들고 놀았다. 아마도 1월 1일에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붉은 와인이 잔에 채워지는 사이, 말도 안 되는 이 모임의 얼굴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나만 빼고 모두 세 쌍의 부부가 앉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가 생각났다. 그는 어쩌다 이런 소소한 일상이 주는 행복을 까맣게 잊어버리게 된 걸까. 어쩌자고 이런 소중한 관계를 내팽개치게 된 걸까. 그는 정말 자신의 선택이 스스로를 구원해 주리라 믿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 결말이 지옥이라도 상관 없어진 걸까. 무용한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질 때 B 오빠는 짠을 외쳤다.


이상한 구심점으로 오늘 여기에 모인 우리. 그런 우리를 받아준 윤 언니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당분간은 지인들이 내어주는 어깨에 조금씩 기대어보자 마음먹었으므로 나는 이 자리에서 외로울 겨를 없이 온기를 채웠다. 우리는 또 언젠가 안주삼아 이 이야기를 하게 될까. 언젠가의 그날까지 지금의 고마움을 두고두고 갚겠노라는 마음으로 나는 세 쌍의 부부 사이에서 꿋꿋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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