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서

2학년 여름방학, 코로나로 인한 그리움과 역명 별칭의 시작

by 외딴별

난 어쩌다 이곳에 내몰렸는가


한 발짝만 뒷걸음질 쳐도 떨어져 버리는

그 무시무시하고 공허한 곳


그 암흑의 공간만은 피하고자

휘몰아치는 바람에 맞서

한 발짝 앞으로 가 벽을 두드려도

저 벽 너머엔 들리지 않는가 보다


그렇게 수많은 날을 두드리고

돌을 던지고 화살을 쏘고

목놓아 울부짖어도

결코 들리지 않은 소린가 보다


아 그냥 그곳에 떨어져서

산산히 부셔저

사라져 버릴까 한다

21.7.13


1학기 기말고사 이후, 나는 정말 어렵게 용기를 내어 반장선거에 출마하고 같은 반 학생들의 놀이에 참여하면서 행복을 얻었다. 그러나 힘들게 놀이에 참여한 이후,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여름방학 전까지의 수업들이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그렇게 방학 전까지 같은 반 친구들과 놀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무너졌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방학식이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행복이 지속되지 못한 불행을 격은 나는 무기력해졌다. 그리고 이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번 "다시 힘내보자"를 되뇌었지만 무기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었다. 한편 기말고사 이후의 오프라인 수업에서 나는 영화 제작 모둠 등으로 친분이 있는 같은 반 학생들 중 일부가 교내 대회에서 높은 성적을 받아 상장을 받는 것을 보게 되었다. 1학년 때에도 같은 반 학생들 중에서 교내 대회에서 상장을 받는 것을 본 적이 있었으나, 그때 상장을 받은 학생은 나와 친분이 전혀 없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와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학생이 상장을 받는 것을 보게 되면서 나처럼 멈춰있는 줄 알았던 학생들이 나와 달리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받아 슬펐었다.


여름방학 동안 나는 크게 두 가지의 고민을 했었다. 하나는 공부였고 나머지 하나는 그리움이었다. 지난 세 번의 방학 동안 공부 측면에서 성공한 적이 없는 나는 부디 이번 방학에는 성공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 계획을 짜면서 공부했으나 여전히 남아있는 눈아픔과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 때문에 이번 여름 방학에도 제대로 공부를 하진 못했다. 한편 나는 7월 중순에 시작된 여름방학 이후부터 기말고사 직후에 영어 학원을 끊었던 네 명의 학생들에 대한 그리움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네 개의 희망이 사라지고 홀로 남아버린 영어학원에서 나는 다른 분반으로 옮겨졌으나 그리움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들처럼 영어학원을 쉬겠다고 말하며 사실상 학원을 끊었다.


그러다 8월이 되니 그 그리움은 줄어들고, 오히려 반장 선거 이후에 반에서 놀았던 같은 반 학생들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갔다. 그리고 이는 점차 같은 영화 제작 모둠 학생들로 확장되면서 결국 우리 반 전체 학생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리움과 함께 코로나 때문에 혼자서도 지하철 역 구경하러 놀러 가지 못하는 현실을 담아 우리 반 학생들 중 일부 학생들의 이름과 비슷한 지하철 역명을 찾아 별칭을 붙여주게 되었다.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하철에 관심이 많은 소위 철덕이었고, 특히 지하철 노선과 역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입학을 계기로 지하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1학년 때에는 담임 선생님을 포함한 여러 교과 선생님들의 이름과 유사한 역명을 그 선생님의 별칭으로 붙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2학년 여름방학, 나는 21년 내내 코로나 때문에 시험이 끝나거나 방학이 되어도 가고 싶었던 지하철 투어를 가지 못했다. 한편 코로나 때문에 같이 놀지 못한 우리 반 학생들에 대한 그리움은 계속해서 커져갔다. 그리고 이 두 상황이 맞물리면서 나는 1학년 때처럼 지하철 투어를 가지 못하는 슬픔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친해지지 못한 우리 반 학생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학생들에게 역명 별칭을 붙이게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역명 별칭은 이후의 고등학교 생활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고, 그 흔적이 현재까지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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