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레 Apr 13. 2023

내 나이만큼 오래된 캠핑카를 샀다

01. 대망의 캠핑카 구입

  캠핑카 여행이 보편화된 유럽에서도 캠핑카의 가격은 상당히 비싸다. 현대식 캠핑카는 소형에 중고라도 몇 천만 원이 훌쩍 넘어가니 우리의 예산으로는 언감생심, 우리는 주인이 열두 번은 넘게 바뀌었을 아주 오래된 캠핑카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유럽은 캠핑카 여행 문화가 일찍 시작된 덕분에 이삼십 년 된 낡고 오래된 캠핑카가 흔한 편이라 그런 차를 저렴하게 사서 직접 리모델링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탈리아에 간 2021년 1월 말은 공교롭게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사망자가 나오고 락다운까지 갔던 이탈리아가 한창 방역에 힘쓰던 때였다. 매주 금요일에 지역별 방역 단계를 새로 발표했는데, 색깔로 구분되는 방역 단계에 따라 이동 제한이 걸렸다. 심할 때는 집 밖으로도 나갈 수 없었고,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은 거의 매주 금지되어서 캠핑카 구입에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 더해졌다.


  우리가 찾던 캠핑카는 80년대 기계식에 크기가 적당한 차였다. 나는 돈을 조금 더 주고 90년대에 나온 차를 사는 게 좋을 것 같았지만 남편은 90년대 차는 전자식이라 고장이 오히려 잦아서 꺼려진다고 했다. 오래된 차는 얼마나 더 오래됐든 덜 오래됐든 고장이 잦을 수밖에 없는데, 인건비가 비싼 유럽에서 매번 수리비가 나가고 일정이 지체될 테니까. 반면 80년대 차는 기계식에 구조가 단순해서 수리가 쉽고, 오래된 만큼 가격도 더 저렴하다. 그리고 크기, 큰 차는 주차도 어렵고 무게 때문에 가뜩이나 오래된 엔진에 부담이 많이 가기 때문에 생활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크기가 작은 차여야 했다. 그런데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적당한 차를 찾기가 어려웠다. 코로나로 인해 캠핑카 여행이 인기를 끌면서 팔려는 사람이 적어지고 가격도 오른 탓이었다.


  봄이 되기 전에 리모델링할 시간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는데 차를 바로 구하지 못해 애가 타던 어느 날, 남편이 한 중고사이트에서 저렴한 가격에 올라온 85년식 두카토(Ducato) 캠핑카를 발견했다. 이게 얼마나 오래된 차냐면 이때 나온 차에는 에어컨이 없다. 일반 차량에 에어컨이 보급되기도 전에 나온 차인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창문에 크게 금이 가 있는 등 겉보기에도 관리가 잘 안 되어 있었고, 내부도 낡고 촌스러웠다. 하지만 그만큼 가격이 저렴했고, 마침 지역도 그리 멀지 않은 토리노였고, 또 때마침 다음 일주일 동안은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이 가능한 상황이니, 언제 다시 이동 제한이 걸릴 지 알 수 없었던 당시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우리는 당장 연락해 예약을 잡고 2월 19일에 토리노로 차를 보러 갔다. 함께 간 시어머니의 남편 피노가 차를 함께 살펴봐 주고 가격 흥정도 해 줘서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다. 이후에 그 차에 들여야 했던 돈을 생각하면 그것도 비싸게 산 거였지만, 명의 이전 등록비까지 포함해서 3,600유로(480만 원 정도)에 샀으니 당시로서는 만족스러운 거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차를 실제로 봤을 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상황상 큰 하자만 없으면 살 마음으로 간 거였기 때문에 오래 고민하지 않고 사기로 했다. 차를 보러 온 다른 커플이 조금 떨어져 기다리고 있어서 오래 고민할 여유도 없었고, 그냥 이 차가 우리 차구나 싶은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곧바로 돈을 지불하고 주인 아저씨와 함께 점심을 먹은 후 서류 작업과 이전등록, 보험 문제까지 완료하고 나니 저녁이 되었다. 어머니와 피노는 타고 갔던 차를, 우리는 캠핑카를 타고 돌아왔는데, 웬걸 이 낡은 캠핑카는 생각보다 엄청 털털거리고 귀가 먹먹할 정도로 굉장한 소음이 났다. 고속도로를 탔는데 속도가 나지 않아 민폐를 끼치고, 계기판에는 도저히 뭔지 모를 경고등이 깜빡이기 시작하고, 설상가상 비까지 오기 시작해 와이퍼를 켰더니 묵은 먼지가 유리창을 덮어 오히려 앞이 하나도 안 보이고 아주 난리였다. 


  그런데 그 당황스러운 와중에 헤실헤실 웃음이 나는 거다. 드디어 우리 소유의 캠핑카가 생겼다는 기쁨 때문이었지 싶다. 뭔가 엉망진창이긴 하지만 드디어 캠핑카를 샀다는 사실과 우리 소유의 캠핑카를 몰고 이탈리아의 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흥분으로 들뜬 우리는 얼떨떨하면서도 마냥 즐거워서, 차가 얼마나 엉망인지 이야기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그때는 차가 굴러가기만 하면 다른 건 고치면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의 대책 없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전 01화 빈털터리가 될 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