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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보인다는 말의 무게

by 밤비



서른을 넘기면서부터는 새로 맺는 관계에서 나이나 직업 같은 구체적인 개인 정보를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루는 내 나이를 듣게 된 상대가 두 눈이 동그래진다. 두 손으로 입을 가린 모양새가 어쩐지 과장되었다. "어머, 젊어 보이세요!" 사회적 관계를 위한 처세술임을 잘 안다. 나 역시 비슷한 텐션으로 감사를 표한다.


젊어 보인다는 말, 어쩐지 별로 기쁘지 않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성취한 직업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나이 어림'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는데도 여전히 어려 보인다는 말은 기분 좋은 칭찬처럼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 '아직 덜 늙어서 그래!'라고 한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젊어 보인다는 말이 50살을 30살로 본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보통은 2~3살, 많아봐야 5살 정도 어려 보인다는 뜻에 더 가깝다. 50살의 어떤 이가 45살이나 47살로 보인다는 것. 그건 무슨 의미일까. 젊어 보인다는 말은 진짜 젊다는 말이 아니라, 아직 덜 늙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죽음 말고 확실한 것이 또 있을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고, 몸은 늙는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이 듦은 순리를 따르는 일이다. 우리는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 자연스럽게 늙어간다고 말하지만 세상은 그와 동시에 '젊어 보이는 것'을 요구한다. 노화를 받아들이라 하면서도, 노화의 흔적은 지우라고 말한다. 노화는 자연의 이치라 말하면서 왜 사람들은 젊어 보이는 것에 집착할까. 나는 그 모순 앞에서 종종 멈춰 선다. 늙어 보이지 않으려는 이 욕망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걸까. 순리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데, 왜 이리 우리는 부자연스러운 행태를 취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일상을 점검하게 된다. 노화에 저항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매일 달린다. 이유는 단 하나, 무너지지 않는 체력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젊어 보이기 위해서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젊어지기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내는 체력을 쌓기 위해 달리는 것이다. 그것이 노화를 받아들이는 나만의 방식이다. 그런데 가끔은 이 모든 뜀박질조차, 순리를 거스르는 어떤 행위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는 순리를 거스르고 있는 걸까?


순리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때로는 체념의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또는 누군가가 만들어둔 질서나 체제를 무조건 따라야만 한다는 강요처럼 들리기도 한다. 순리대로 산다는 말이 특정 사람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하는 논리처럼 보일 때도 있다. 나는 순리를 안다는 사람에게서 진정한 순리를 본 적 없는 건 아닐까.


아직도 늙는 일이 어렵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몸과 마음의 변화, 기능의 저하를 마주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애쓴다. 지금은 매일 달리는 내가, 그 언젠가는 달리는 시간이나 거리를 줄여야 할 수도 있고, 영원히 달리지 못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 때는 느린 걸음의 산책에 만족해야 할 지도 모른다. 젊음을 욕망하지는 않지만, 이 몸과 마음을 끝까지 잘 데리고 가고 싶을 뿐이다.


그래, 어쩌면 그것이 내가 택한 순리다. 젊음을 쫓지도, 체념하지도 않으면서 아직 늙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 배움이 나의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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