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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불나방 07화

불나방 7화: 딸딸이

by 밤비


모든 건 한 순간이었다. 시동을 걸었던 그 날 밤 이후로 나를 알아보는 아이들이 늘었다. 지후 형이 던진 날 선 한 마디와 아이들의 눈빛이 동시에 쏟아지던 그 순간부터였나. 아니, 실은 태영 광장에 매일같이 죽치고 있는 애들이라면 서로가 서로의 얼굴쯤은 다 알았다. 그저 제사상 뒤켠 병풍이라던가 해변가 무수한 돌멩이 중 하나 쯤으로 여겼을 뿐. 갑자기 필요가 생긴 거다.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았던 병풍도, 돌멩이도 언젠가는 쓸모가 생기는 법이었다.


매일 자정이면 여유롭게 신발을 꺾어 신고 집을 나섰다. 밤바람을 이불 삼아 광장을 찾고 어슴푸레 밝아오는 태양을 배경삼아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이 반복됐다. 언제나처럼 집은 더없이 고요하고 또 지루했다. 오히려 욕설과 여러 파열음이 온 몸을 감싸는 광장이 더 편안했다. 포근한 담요처럼 나를 뭉근하게 덮어주는 광장의 소란은 매일 밤 나를 달뜨게 했다. 환한 대낮, 집의 적막함을 견딜 수 없어 하릴없이 광장을 배회하는 날이 하루 이틀 늘어만 갔다. 자연스레 자는 시간이 턱없이 짧아졌고, 눈 밑으로는 시커먼 다크서클이 그늘을 드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근 주변 지역에서 경찰 단속이 강화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몸을 사려야 했다. 바이크를 집 앞 골목에 세워두는 날이 더 많아졌다. 바이크를 몰고 가지 않는 날도 병아리 키는 무조건 주머니에 넣어 다녔다. 내 쓸모는 그거였다. 언제 어디서든 시동을 거는 만능 열쇠.


한 번 반짝하고 말 인기가 아니었다. 옳은 경로로 구한 바이크보다 불확실한 경로로 마련한 바이크가 훨씬 더 많은 광장이었다. 시동이 잘 안 걸리는 바이크 앞에 앉아 키를 흔들면 애들은 매번 보는 장면임에도 새로이 감탄을 흘렸다. “새끼, 딸딸이 존나 잘 치겠네. 스냅 봐라.” 누군가 웃자고 던진 농담 같은 그 표현이 하루 이틀 새 광장에서 나를 지칭하는 은어가 돼버렸다. ‘크, 역시 딸딸이. 너 이새끼, 진짜 대박이다.’ 그 모든 말들이 안으로 하나 둘 스며들었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 ……. 어느덧 내 손을 거쳐 간 바이크는 열 댓 대가 넘었다.


내가 형을 쫓던 눈길도 저랬었나. 은근한 시선들이 느껴질 때마다 발끝이 간질거렸다. 사실 애들은 주목하는 건 내 손이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모두가 궁금하고 갈망하는 게 고작 이 손이라고 해도, 결국 이 손도 곧 나니까. 손이 나인지, 내가 손인지 그런 고민은 얼마 안 가 중요하지 않아졌다. 광장 한 켠에서 바이크가 조금만 삐걱거려도 ‘야, 걔 딸딸이 어딨냐.’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딸딸이. 내게도 어엿한 이름이 생긴 거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누구도 쉽게 뺏아갈 수 없는 나만의 아우라가 생겼다. 발끝에 채이는 수백개의 돌멩이 중 하나였던 내가 한 번쯤 손길이 닿는 조각이 된 것처럼, 이대로라면 언젠가 존재 자체로 완벽한 지후 형처럼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새벽 3시. 몇몇 형들이 다가와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오른쪽 볼에 옅은 칼빵이 문신처럼 깊이 패인 형의 얼굴에 눈이 먼저 갔다. 덩치가 크고 험상궂게 생긴 형 한 명과 뼈다귀처럼 마른, 키가 멀대같이 큰 형도 함께였다. 서로 눈짓으로 오가는 짧은 신호가 뭘 의미하는 지 알 수 없었다. 늘 무리의 소란스러움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던 형들이었다.


“야, 딸딸아. 잠깐만 도와주라.”


친한 척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거는 손. 가벼운 말투에 비해 조금도 가볍지 않은 악력. 협박 같은 부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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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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