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끝 감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시동만 빼면 완벽한, 저 바이크 덕에 여러 번 겪어 봐서 안다. 수십, 아니 수백 번은 똑같은 덜컥거림을 반복한 뒤에야 알게 됐다. 아주 미묘한 각을 맞춰 손목 스냅을 십분 활용해야 겨우 느껴지는 찌릿한 느낌. 망설이면 안 된다. 그 때 바로 낚아채야 한다. 기회는 한 번 뿐이다.
거센 들숨 한 번에 차가운 겨울 밤 공기가 기도에 달라붙는 게 느껴졌다. 목구멍이 얼얼할 만큼 시렸지만 가슴 안쪽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온 몸의 피가 손끝으로 쏠리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성공할지 말지는 모른다. 밑져야 본전. 엎질러진 물이다. 본능적으로 우당탕거리는 바이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이미 몇몇 시선이 따라붙는 걸 느꼈다. 이제 다시 자리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시동이 채 걸리지 않아 기묘한 소리만 거듭 울리는 바이크는 이내 폭발할 것처럼 보였다. 소리가 멈췄다가 다시 터지기를 반복할 때마다 아이들의 욕설과 야유가 덩달아 커졌다. ‘아 진짜 이제 그만 하라고.’, ‘뽑기를 해도 별 병신 같은 걸 뽑아가지고’ 대화만 들으면 서로가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겠다. 설왕설래하는 무리 사이로 어깨를 들이밀자 갑자기 애들이 입을 다물었다. 당황스러움과 황당함이 몰려오는 이 상황을 해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해보였다. 갑작스런 정적 너머,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것 같은 심장 고동 소리만이 귓속에서 웅장하게 울렸다.
고민 없이 내 병아리 키를 키박스에 쑥 꽂았다. 키가 절반쯤 들어가다 말고 멈췄다. 지금부터는 이대로 손의 감각을 믿을 수밖에.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손끝에 느낌이 오자마자 재빨리 탁 반동을 줬다. 희뿌연 연기와 함께 부릉! 소리가 터져나오고, 이내 웅웅거리는 진동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왔다. 바이크를 향하던 시선이 곧장 내게로 쏠렸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미쳤다. 방금 저거 봤어?”
“헐 대박, 저게 진짜 된다고.”
저만치서 거리를 두고 상황을 지켜보던 아이들이 금세 웅성거리며 몰려들었다. 상황 파악이 안 된 채 얼빠진 표정으로 서 있던 바이크 주인의 두 눈은 두 배나 더 커졌다. 놀람과 분노,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인정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태연한 척, 천천히 키를 돌려 뽑았다. 그런데도 요란하게 살아 있는 엔진소리에 술렁임이 더 커졌다.
“뭔데, 키 뺐냐? 쟤가 방금 뺐는데?”
“야 졸라 신박한 기술인데?”
맞지 않은 키를 꽂아 시동을 걸었다는 사실보다 키를 빼냈는데도 여전히 꺼지지 않는 엔진이 더 신기하다는 듯 주변으로 더 많은 인원이 몰려들었다. 흘깃거리며 분위기를 파악하는 눈빛,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낸 아이, 뒤늦게 들려오는 촬영음, 야유가 아닌 호응의 휘파람 소리까지. 순간, 내가 이제껏 살아본 적 없는 세계의 중심으로 내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사실 이건 운이다. 나도 이유를 몰랐다. 허술한 중고 바이크라 그런가, 엉성하게 이어진 전선이 어디선가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태영 광장의 구름처럼 몰린 무리 한 가운데 내가 서 있다는 것.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리고 보잘 것 없던 이 손 하나가 어떤 새로운 세계를 연 게 분명했다. 나를 향한 아이들의 눈빛이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하마터면 키를 놓칠 뻔 했다. 주머니에 키를 집어넣는데도 여전히 찌릿한 감각이 손 끝에 남아 불타고 있었다. 아까부터 요란스러운 심장은 지칠 줄 모르고 온 몸을 뒤흔들 듯 날뛰었다. 내가 진짜 해낸 게 맞나 싶어 눈앞이 아득해졌다가도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웅성거림이 다시 나를 현실로 끌어냈다. 두려움과 환희가 뒤엉켜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했다. 내가 이제야, 무언가가 된 것만 같았다.
아이들이 앞다투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서너 대의 바이크가 내 앞에 줄지어 세워졌다. 이미 몇몇은 핸드폰을 열어 촬영을 시작했고, 게 중 하나는 라이브 방송이라도 켠 듯 실시간으로 상황을 중계하기까지 했다.
“야, 내 것도 해봐라.”
“여기 있는 거 다 해봐! 그럼 인정!”
“쫄? 미쳤네 진짜. 빨리 해 봐!”
급작스러운 전개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게 운이라는 게 탄로날까 걱정되면서도, 이유 모를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불꽃처럼 번지는 관심 속에서 내 손은 제가 주인공이라도 되는 듯 멈출 줄 몰랐다. 병아리 키가 여기 저기 쑥쑥 꽂히며 신나게 날아다녔다. 키를 뽑아도 시동이 걸려 있는 건 아까 그 바이크뿐이었지만, 실망하거나 야유하는 애들은 없었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어떤 바이크든 키만 꽂으면 시동이 걸린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이미 잔뜩 취해 있었다. 마치 만능 열쇠를 발견한 원시인들 같았다.
“... 재밌냐.”
불호령같은 음성. 고개를 드니 홍해처럼 갈라진 아이들 사이로 지후 형이 서 있었다.